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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일기] 사업계획도 미니멀리즘으로 안될까요?

계획보다 실행이 우선인 조직을 위하여

by 최호진

드디어 일정이 나왔다


얼마 전 드디어 사업계획의 포문을 알리는 문서가 나왔다. 바야흐로 사업계획의 시즌에 대한 신호탄이 쏘아졌다. 직원들은 내년도 사업계획 문서를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업계획을 세워본 직원이라면 알 것이다. 이 작업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말이다. 9월과 10월 회사 전체적으로 내년도 어떤 사업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치열한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매출 목표도 산출하고 적정 이익도 고민하고 새로운 신사업 꺼리도 찾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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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기획 업무보다는 마케팅 실행을 주로 하고 있어서 크게 일이 많아질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1년 가까이 사업을 운영하면서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들을 몇 개 생각해 놓은 터라 간략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정리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는 않을 듯 싶다. 물론 내년도 내가 이 부서, 이 팀에 있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해보고 싶은 "꺼리"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계획"이라는 말은 말만 들어도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분명 부수적으로 해야할 일들이 뒤따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굳이 왜 이런 일들로 많은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아야 하느냐에 대한 회의감으로 연결된다. 복직을 하고 나서 처음 사업계획을 볼 때부터 그리고 1년 내내 사업을 진행하면서 왜 이런 "뻘짓"을 해야 하나 싶다.


사업계획에 회의감이 드는 이유


그 이유는 작년도 사업계획 안에 있었다. 분명 사업계획을 하느라 담당자들은 몇 날 며칠을 야근을 했을 것이다. 꽤 많은 고민이 담겨 있는 사업 계획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 내가 하는 일의 상당수는 사업계획에서 세웠던 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팀 직원들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사업계획을 세우느라 분명 고생했을 텐데, 불가 몇 개월만에 사업계획은 역사가 되었다. 아무 쓸모도 없는 고루한 문서같은 느낌이었다. 역사가 그러면 안되는거지만.


임원이 바뀌고, 부장이 바뀐 것이 큰 몫 했다. 기존 임원, 기존 부장이 작성했던 사업계획이 그들의 눈에 들어올리가 만무다. 그들 나름대로 그들이 만들어 놓은 판으로 새롭게 세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업계획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임원도, 부장도 바뀌면 말짱 도루묵이 될 게 뻔하니까.


회사라는 조직에서 인사이동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일개 직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 윗 사람이 바뀌어서 사업계획이 무용하게 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데 있다. 인사이동을 떠나서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서 1년 단위의 사업계획이 오히려 우리 사업을 경직시키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작년과 올해의 경우가 그랬다. 코로나로 인해 경영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올해면 대충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이제는 "위드 코로나"까지 고민하고 있다. 이런 큰 전염병 앞에서 계획이 어떤 의미가 들까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비상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코로나 상황에서 궤도를 지속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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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중심의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는 것도 계획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들은 작은 기업이다 보니 계획 중심이라기 보다는 실행을 하면서 궤도를 수정하는 전략을 쓴다. 농구에서 피보팅처럼 한 축을 두고 다른 발을 계속 바꾸는 방식을 스타트업에서는 애용한다. 그들의 공격적이고 유연한 전술 앞에서 우리의 뻣뻣한 계획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물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용하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계획이 너무 뻣뻣하진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세우느라 너무 많은 노력과 열정이 쏟아 부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위해 썩은 동태 눈으로 야근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계획을 유연하게 세우며 실행 자체에 포커스를 맞췄으면 한다. 숫자에 대한 계획만 큰 틀로 잡아놓고 그외의 다양한 활동은 자유롭게 하면서 계속적으로 피보팅을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뜬구름 잡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



내가 장기 경영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뜬구름을 잡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이야기는 대개 거짓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왜 일하는가> p.166


얼마 전 읽은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왜 일하는가>를 읽었다. 책의 한 구절을 읽고 나는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는5년, 10년 앞을 내다 보기는 오늘 하루를 5년, 10년처럼 경영한다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가 왜 그렇게 경영을 하는지 그 이유도 설명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실질적인 계획을 세우고 싶다는 이유에 대해 나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전 원대한 꿈을 그려보자며 10년 뒤 우리 회사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던 프로젝트도 떠올랐다. 과연 그게 예쁜 거짓말은 아니었을까?


한편 이나모리 가즈오가 말한 5년 10년이 지금의 시대에서는 1년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급변하는 세상이고 알 수 없는 변수들이 튀어나오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1년 단위의 큰 계획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실행하지도 못할 "보기좋은" 계획들을 세우느라 골머리를 앓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행에 집중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으면 한다. 그 연장선에서 사업계획에 대한 틀도 바뀌면 좋겠다. 그것이야 말로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특히 내가 종사하는 금융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내가 이렇게 쓰는 글이 회사에서 아무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들 1년 뒤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에 2달 정도 몰두하며 예쁜 보고서를 만드는데 혈안이 될 것이다. 결국 불평 불만을 담은 글밖에는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사업계획에 대한 무게감이 떨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로 정리해본다.


사업계획도 이젠 미니멀리즘의 시대로 갔으면 좋겠다. 더이상 뜬구름 잡는 거짓말을 하느라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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