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스터디카페에서
지난 월요일, 오랜만에 홍대 스터디카페를 찾았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몇 달동안 집에서 멍때리는 시간이 많았다. 방학 시즌이라 아이들이 집에 있다는 핑계도 있었지만(참고로 아이들은 농촌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하고 나서 힘이 빠져서인지 그냥 넋놓고 앉아있고 싶었다.
그렇다고 잘 쉰 것도 아니었다. 핸드폰을 잡고 핸드폰에서 나오는 동영상을 아무 생각없이 보는 경우가 잦았다. 굳이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한 두 시간은 기본이었다. 별 생각 없이 배구 중계를 보거나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자극적인 영상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도, 달리는 일도, 꾸준히 하긴 했지만 예전만큼 열과 성을 다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해야 한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는 수준이랄까?
지난주말 아이들을 단양에 데려다 주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문득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멀리 단양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데 아빠가 무기력하게 지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쓸데 없는 죄책감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마음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지내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약속하는 마음으로 편지까지도 썼다. 아빠가 좀 더 열심히 바지런히 살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찾은 곳이 스터디카페였다. 휴직 기간동안 나를 잡아 준 곳이 바로 스터디카페였다. 나만의 오피스같은 공간이다. 매일 여기에 와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하루 8시간 넘게 앉아서 머리를 쥐어 짜며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한 권의 책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런 스터디 카페를 복직하고 나서 코로나 때문이라며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었는데,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다시 오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칼퇴근을 하고 오랜만에 스터디 카페에 들러 책도 읽고 글도 쓰며 휴직 때의 기분을 느껴봤다.
오랜만에 스터디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니 정든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휴직 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오르니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간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며 새롭게 시작해봐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물론 몸은 조금 피곤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뿌듯한 감정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별 거 한 것도 없었는데 별 거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다를 좋아하는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전화통화도 자주 하는 편이다. 주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돌리곤 하는데 스터디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회사 선배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최근 몸이 안좋아서 잠시 쉬시다 복귀를 하신 분이었다. 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셨고 항상 쓴소리 단소리를 서슴지 않고 건네주시는 감사한 분이다.
안부 인사를 나누며 스터디카페에서 오랜만에 생각 정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선배가 대뜸 나에게 한 마디를 건네셨다.
"너 조금 위험해 보여!"
선배는 내가 아등바등 지내는 게 걱정되는 듯 했다. 뜨끔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선배의 이야기가 충분히 타당했다. 에너지를 과하게 표출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데 내가 지금 너무 과하게 에너지를 뿜어 내고 있으니니 고꾸라질까 걱정되는 듯 했다. 하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힘들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고,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그러는 건데 조금은 과한 표현은 아닌가 싶어 살짝 서운한 느낌도 들었다. 날 얼마나 자주 봤다고.
그런데 선배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후배들과 점심을 먹는데, 한 후배도 나에게 SNS에 우울한 이야기만 올라오는 것 같다며 나의 복직 생활을 걱정했다. SNS에 힘들단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힘듦을 표출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지금 힘들어 보일 수도, 위험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괜시리 선배에게 억울한 감정을 느낀 게 미안했다.
목요일 다시 스터디카페를 찾았다. 나흘만에 찾아온 스터디카페다. 그리고 지금 자리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혼자 글을 쓰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나 지금 진짜 힘든가? 내가 위험한가?"
남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조금 힘들게 지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회사에 적응을 잘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직장생활에서나 직장 밖에서나 예전과 다른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지금 괜찮은 것 같다. 내가 나 스스로를 괜찮다고 판단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복직해서 좋고, 지금의 회사 생활이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 스터디 카페에 와서 여유롭게 생각도 정리할 수 있어서 또 다시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좋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다. 혹여 내 글에서 힘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내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내가 글을 잘 못 써서 그런 거라고, 표현을 잘 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좋은 말씀은 항상 감사하다. 덕분에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고 글로 정리하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힘들까봐 걱정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오늘도 한 편의 복직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