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해 보이지만 하고 싶은 일들
저는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입니다. 남들이 인정해주면 광대가 하늘까지 승천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면 극도로 우울감에 빠지곤 하는 스타일입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저는 남들보다 그 강도가 센 편이었습니다.
휴직을 하고 왜 제가 남들보다 인정욕구에 집착하는 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이유는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야만 제가 잘하고 있다고 믿는 유형이었습니다. 제 판단보다는 남들의 판단에 더 귀를 기울였죠. 이런 마음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표가 있으니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됐지만 직장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일도 잘 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하고 때로는 정치도 필요했습니다. 물론 제 뜻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인정욕구를 더 강하게 느꼈던 것 같았습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편한 생각이 그런 욕구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달까요?
그런 면에서 휴직은 제게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진짜 인정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동시에 달리기를 하면서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실행하며 성취감을 얻기도 했지만, 독서하고 글쓰고 달리는 시간 동안 저의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자라났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흔들리긴 하지만요.
그래서 복직하는 게 그리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잘 하고 못 하고에 대한 판단은 저 스스로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좋은 고과를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승진에서 계속 누라된다 하더라도, 행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다 하더라도 저 스스로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복직을 하고 몇 달을 지내보니 제가 아직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최근 옆 팀에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프로젝트와 관련해 몇 군데 업체에 연락해 "영업"을 해야 했습니다. 나름 뜨고 있는 부문이라 명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업체들과 좋은 "판"을 만들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A라는 업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 프로젝트에서 바라는 것은 단순히 프로젝트에 참여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지만 저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그 업체도 움직일 거라 생각했고 회사에도 도움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이것도 엮고 저것도 엮어서 재미난 일들을 실행해 보고 싶더라고요. 물론 우리 내부에서 그런 것들이 처리 되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굳이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젝트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무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지금 걸음마 수준의 프로젝트로서는 제가 진행하는 부분까지는 처리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충분히 맞는 지적이었지만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이런 저런 대안을 모색하고 싶었는데 프로젝트 담당자는 그게 과연 우리 부서의 역할에 큰 도움이 될까라는 회의적인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제가 어쩌면 선을 넘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서의 입장에서 보면요.
저희 팀의 다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또다른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저희는 이제까지 고기를 잡는 것에 열중하는 편이었습니다. 잡은 고기를 더욱 크게 키우는 일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집에 방점이 있었고 유지를 하는 것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마케팅도 그러다보니 한쪽으로 쏠려 있었고요. 게다가 유지를 위해서 어떤 액션도 취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저희가 배정받은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죠.
다른 부서와의 협조를 하면 해결될 부분이 많아 보였습니다. 재무팀에 예산을 부탁하지 않아도 되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쉽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부서간 장벽이 베를린 장벽보다 더 견고해 보이거든요. 그 부서도 저희 부서도 당장의 눈 앞의 이익이 만져지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 전체의 이익을 논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퇴근을 하고 산책을 하다가 과연 그게 정말 회사를 위한 길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분명 회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인정 받고 싶어 그러는 것이라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주구장창 해봤자 크게 부각될 것 같지 않으니 뭐라도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복직을 하고 나서 보니 제가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다들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초조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잘 마음을 다스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꼭 나쁜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충분히 건전한 생각이라고 말이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한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이 추진력을 만든다면 그게 꼭 문제가 될까싶었습니다.
제가 그 새 직장생활에 찌들어 버린 걸까요? 아니면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직 저도 답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복직하고 많은 부분이 변해 가고 있다는 것 같기도 합니다. 회사라는 곳이 몇 달 만에 저를 바꿔 놓을 만큼 강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떤 마음 때문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해보려고 합니다. 아직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은 오지 않지만 제 분야의 일을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싶은데 그게 꼭 반성해야 할 부분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나 둘 하다 보면 뭐라도 보이지 않을까요? 다만 그래도 다행인 건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악착같이 꼭 하고 말겠다는 마음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해보자는 것 뿐입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만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편안한 마음은 휴직을 했으니 나올 수 있는 마음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