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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일기]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안되나요?

탱자가 필요한 땅에서는 탱자를 잘 키워 봅시다

by 최호진


안될 것 같은데…


며칠 전의 일이다. 팀장이 회의를 다녀오고 나서 그 내용을 공유해 주었다. 플랫폼 관련 부서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우리 부서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회의 내용을 들어보니 그럴 듯 해 보였다. 고민을 많이 한 티가 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보고서를 읽는 동안 보고서대로 될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우려"가 들었다. 뭔가 보고서와 현실의 괴리감이 느껴진달까? 굳이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와서 그 서비스를 이용할 것 같지 않았다. 좋은 서비스인 건 맞지만 그게 우리 회사에서 제공하는 게 적합해 보이진 않았다. 회사 일에 대해 자꾸 부정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 나 스스로 경계하고 있기는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저녁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도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전략 쪽에서 이 서비스를 회사에 도입하면 어떨까 검토 보고를 한다며 아내 부서에 문의를 해왔단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검토하는 내용에 부정적이었다. 물론 아무 결론도 안났지만 스타트업도 하는 일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가 할 것도 아니라 굳이 심각할 필요도 없는데, 자꾸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왜 우리가 하면 잘한다고 생각할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남귤북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남쪽의 귤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라는 말로도 많이 활용하는데 이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이야기가 재미있다. 나무위키에서 따온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제나라의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초나라 왕이 일부러 안영의 기를 죽이려고 초나라에서 도둑질을 하다 잡힌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끌고 오게 했다. 초나라 왕은 그 죄수에게 "너는 어떤 죄목으로 잡혔느냐?"고 하자 죄수가 "도둑질을 하다 잡혔습니다."고 했다. 또 그 죄수에게 "너는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묻자 죄수는 "제나라 출신입니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초나라 왕은 안영에게 "이거 제나라 사람들은 순 도둑놈들 뿐이로구만!"하고 비웃었다. 이에 안영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신이 듣건대 귤을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회수 이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 잎은 비슷하지만 맛과 향은 다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물과 토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 사람도 본래 제나라에 있을 때는 선한 사람이었지만 초나라로 옮겨 와 살면서 물 들었기에 저렇게 도둑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처해진 환경에 따라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는 뜻인데, 이 말이 생각난 건, 우리 회사나 아내 회사 모두 처한 환경은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데서 수확한다고, 귤을 가져와서 귤을 얻으려고 하는것 같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의사 결정 구조나, 여러 상황들이 그들과 다른데 착각하는 건 아닌가 걱정됐다.


(나무위키 참조 : https://namu.wiki/w/%EA%B7%A4%EC%9D%B4%20%ED%9A%8C%EC%88%98%EB%A5%BC%20%EA%B1%B4%EB%84%88%EB%A9%B4%20%ED%83%B1%EC%9E%90%EA%B0%80%20%EB%90%9C%EB%8B%A4 )



시작은 "나"로 부터

그렇다고 귤이 탱자가 되는 게 꼭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탱자도 분명 쓸모가 있을 뿐더러 원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탱자를 얻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 같은 것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차라리 처음부터 탱자를 심어보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점이다. 우리의 물과 토질을 고려하고 그것에 맞게 씨앗을 뿌렸다면, 귤이 나왔다고 실망하지도 않을 수 있고, 탱자도 더 훨씬 양질의 것으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회사도 그랬으면 좋겠다. 다른 회사가 좋은 서비스가 나왔다고 부화뇌동하기 보다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우리만의 서비스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우리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다. 우리가 뭘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그것에 집중한다면, 굳이 귤을 심어 놓고 귤을 얻기 위해 헛심을 쓰지 않아도 되고, 탱자가 나왔다고 실망도 안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자주 언급되지 않지만 전통적인 마케팅 분석 중 3C에서도 회사(Company) 를 경쟁자 (Competitor) 보다 먼저 분석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잘 하는 것을 먼저 찾아 보고 그 이후에 경쟁자나 시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게 더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잘 한다고 우리도 잘 할 수 있다소ㅠ생각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나나 잘하자


이건 비단 회사에서 신제품, 새로운 서비스를 내는 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떻게 변해야 할 지를 고민하는 것에도 적용할만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뭐든 시작은 "나"에 대한 분석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을 얻어내는 데 적합한 방법이라고 본다.


나다움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나를 찾아가는 것이 내가 잘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는 나를 바꾸는 일에도 필요하지만 타인을 대할 때도 특히 타인의 변화를 바랄 때도 필요한 자세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내 마음대로 휘저으려 생각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아이들을 내 생각대로 하려다 몇 번 삐그덕 거린 경험이 있어 나 또한 조심하는 중이고.


그렇게 생각해보니, 회사가 바뀌길 바라는 내 마음 속에도 아이를 키울 때 아이들이 내 마음대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숨겨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허무하긴 한데, 나나 잘 사는 게 더 중요한 듯 싶다.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것 같기도 하고.


내 귤이나 (탱자일수도) 잘 키워 보련다. 결론은 이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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