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로모션도 자기계발처럼 하면 안되나요?

by 최호진

반가운 잔소리



매주 월요일 오전, 회사 임원회의가 사내 방송으로 생중계된다. 직원으로서 임원회의가 그리 유쾌하진 않다. 듣다 보면 임원들의 언변에 실망스러울 때도 많은데, 회의가 달갑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임원회의를 통해 떨어지는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가을 낙엽 떨어지듯 후두둑 하고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의도적으로 방송을 끄게 된다. 그렇다고 과제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굳이 그것을 생중계로 맞고 싶지는 않다. 시간이 걸릴 뿐 내 귀에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 날은 조금 달랐다. 회의 주제가 우리 부서와 연관도 깊었기에 방송을 끝까지 들어야 했다. 아니 뭔가 본능에 끌리듯 그날은 회의 내용을 듣고 싶었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오랜만에 반가운 문장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듣고 싶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사장님의 훈화(라고 쓰고 잔소리라 읽는다) 말씀에서 나온 말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아인슈타인의 원문은 좀 더 과격한 표현이 들어 있었는데, 이 말을 처음 들었던 것도 사장님으로부터였다. 내가 속한 부문의 부사장으로 계실 때 회의 석상에서 이 말을 하셨는데 이게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회사 일이 아닌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자기계발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나 스스로의 변화를 위해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방식의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을 하고 나서는,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힘겨울 때 이 말로 위로하기도 했다. 분명 다른 결과가 있을 거라며.


회사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오랜만에 사장님으로부터 반가운 "잔소리"를 들으니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이제는 회사에서 말이다. 업무로. 게다가 연초에 떨어진 우리 팀의 미션이 꽤나 과중하게 느껴졌던 찰나였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고, 기왕이면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것들을 하나 둘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좋든 나쁘든 기존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대신 무리하진 않기로 했다.새로운 도전이랍시고 크고 거창한 것을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자기계발에서 했던 것처럼 작지만 의미있는 도전을 하나씩 쌓아가고 싶었다. 회사 업무에서도 말이다. 덕분에 마케팅 담당자로서 이런 저런 새로운 프로모션을 기획해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방법을 바꿔보는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의미있는" 도전이었다. 다행히 팀장님과 부장님도 좋아하는 눈치였고.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여기 저기 시어머니들의 참견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비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분도 있었고 쓸데 없는 보고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대효과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물론 회사 일을 하면서 비용과 효과를 예측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굳이 돋보기로 하나씩 세밀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새로운 시도를 권한다면 조금은 풀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너무 새로운 시도에 집중했던 걸까?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유익하다.


덕분에 연초에 조금 바빴다. 그렇다고 야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바쳐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근무 시간 중엔 다른 생각을 할 틈 없이 일만 해야했다. 여기 저기서 참견하는 목소리에 조금 귀찮게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팀 동료에게 부탁하느라 미안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도들이 쌓이다 보면 분명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거라는 믿음으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결과가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 성적표를 받지는 않은 상황이다. 나에게 시어머니같은 참견을 하신 분들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덕분에 회사 일을 하면서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만들어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귀찮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도가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결과를 가져다 주는 듯 했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말이다.

keyword
이전 09화기획도 계획도 실행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