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보면서 얻어 걸리는 게 진짜다
지난번 복직일기를 쓸 때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힘들다며 투정하듯 쓴 글이었는데, 쓰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의 마음가짐이 중요해 보였다. 글을 쓰면서 다시 힘을 내보자고 다짐했다. 덕분에 글이 주는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불만이 눈 녹듯 사라졌다거나 짜증을 내는 횟수가 줄어든 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물론 이 기분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런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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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추스리고 처음으로 시작했던 일은, 업체에 콜드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같이 뭔가 해보면 좋을 것 같았는데 “읽씹”을 당할까봐 콜드메일 못 보내고 있었는데 글의 힘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다행히 상대방은 반응을 보였고, 그 반응이 나쁘지 않아 미팅 약속까지 잡을 수 있었다. 아마도 새로운 프로모션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양사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내게도 유익했으면 하고.
실적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프로모션도 진행할 수 있었다. 팀 사람들과 회의하다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던 고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행사”를 설계할 수 있었다. 다른 부서와 함께하는 새로운 일들도 진행하게 됐는데 그것 또한 어떤 결과가 나올까 기대하는 중이다. 그리고 하나 둘 힘을 내 해보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물론 예산도 고려해야 하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감수해야겠지만 우선 재미있다고 느껴져서 다행이다. 그게 얼마나 우리 팀 업무에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낼 지는 아직 가늠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하나씩 걸리는 뭔가가 나오지 않을가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들었다.
노희영의 브랜드 법칙에서 나온 “백코에 한코”라는 말처럼 백번 시도하다 보면 하나라도 얻어 걸리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이긴 하지만 백 번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우연처럼 쨍하고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 뭐 안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마케팅은 '백 코에 한 코'라고 생각한다. 뜨개 바느질에 비유한 말인데, 백 번 행동했을 때 그중 하나가 얻어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마케팅에는 전략이 없다고 생각한다. 백 코를 떴을 때 그 백 코는 노력을 의미하며, 그 노력은 운이 아니다. 그리고 그중 한 코가 걸리는 게 마케팅이다.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 중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기획의 핵심에 “실행”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것도 실행이 바탕에 있어야 하며, 좋은 기획안도 실행이 뒷받침 될 때 가치를 더욱 발휘하는 듯 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한편으로 우리 회사 기획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보고 중심의 기업 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 회사에서는 실행보다는 보고서를 더욱 강조하는 분위기다. 그렇다 보니 잘 쓴 보고서라 불리는 것들을 곰곰이 보면 예쁜 그림과 좋은 말들이 난무하는 경우가 많다. 실행을 위한 보고서라기 보다는 보고를 위한 보고서라는 느낌이 강하다. 보고서를 보고 있으면 뭔가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들 때도 있다.
실행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기획을 하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 번도 고객 관련 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고객 리워드 체계를 고민하기도 하고, 마케팅을 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프로모션 방향을 설계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런 보고서를 좋다고 하면 내가 이상한 놈 같게 느껴질 때도 있다. 모두가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이 예쁘다고 칭찬하는데 나는 그냥 벌거벗은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기분이랄까? 물론 조직 운영 방식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차라리 보고서 쓰는 일을 최소화하고 그것을 “시도”로 바꿔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우선 해보고 판단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면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는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일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올해 트렌드 코리아에서 피보팅을 주요 키워드로 예측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굳이 보고서 쓰는 일에 힘을 빼고 그것에 따라가기 보다는 빠르게 해보고 고치고 해보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거센 바람 앞에서 계속해서 영점 조정을 하며 활을 쏘는 양궁선수들 처럼 말이다. 많은 기업들이 지향한다는 애자일의 핵심도 이런 실행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비단 회사 업무에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삶에도 해보고 나서 판단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계획을 세우는 데 너무 큰 힘을 빼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획에 공을 들이느라 정작 실행을 할 때 지쳐 버리진 않았으면 한다. 뭘 얻기 위해서 악착같이 해야겠다는 마음도 지웠으면 좋겠다. 무심하게 툭 하고 던지듯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봤으면 좋겠다. 특히 무기력에 빠져 있는 사람들, 직장생활이 힘든데 그래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뭘 할까 망설이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한 번 해 봤으면 한다. 어떤 것을 할까 고민이라면 편안하게 청소라도 해보라고 말해보고 싶다. 청소가 싫다면 가볍게 달리기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걷기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아무거라도 말이다. 그렇게 뭐라도 하다 보면 힘을 얻게 되고 그 속에서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너무 잘 쓰려고 처음부터 각잡고 글을 쓰기 보다는 손이 흘러가는 대로 쓰면서 방향을 잡아가 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렇게 쓰는 글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요를 체계적으로 잘 쓰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쓰느라 힘이 들진 않았으면 좋겠다. 계획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니까. 글쓰기도 개요보다 진짜 쓰는 게 중요하고.
물론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무작정 실행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 딱 감고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회사도 그렇게 눈 딱 감고 그냥 해보는 것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아니 적극 장려했으면 한다. 그냥 해 보는 것이 어쩌면 계획을 세우고 기획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