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일의 재미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 과정이 흥미롭다. 나중에 회사를 나가서도 도움이 될 것 같은 경험들이다. (아직 확신까진 아니지만) 하지만 회사가 재미만 주면 회사가 아닌 법. 출근하면서 퇴근할 때까지 즐겁게 일하지만은 못하고 있다. 월급을 받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짜증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짜증나는 상황들이 많지만, 요즘 나의 심기를 가장 많이 건드리는 것은 바로 "매출"에 대한 압박이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압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들어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어 힘겨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실적이 나쁜 것도 아니다. 작년에 비해 성과는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계획과 비교해서도 우리의 실적은 순항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달리는 말에는 당근보다 채찍질이 제격인 건지, 자꾸 더 해내라고 압박을 받는 중이다. 이미 연초에 목표를 더 부여 받았는데 최근에는 그것보다 더 하라고 하니 짜증이 치밀어 오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밥그릇에 밥을 더 퍼주듯이 목표를 주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우리가 머슴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어디가서 뚝딱하고 매출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목표를 더 해내라고 채찍질을 가하는 게 나를 힘들게 한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역시 월급을 받기에, 회사에서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말을 잘 듣는 직원은 아니다)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게 있다면 왜 더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시장 상황이 좋아졌다라는 말 한마디가 끝이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있었다. MS(Market Share), 즉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회사들도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회사도 매출을 늘려야 하기에 기존의 목표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게 경영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왜 굳이 우리가 MS에 목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 우리 업권이 경쟁을 해서 독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 상황이라 무리한 MS 경쟁이 꼭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게다가 MS를 높이는 것이 결국 비용을 과도하게 지출하는 것으로 이어져 회사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것도 문제다. 이런 저런 문제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MS를 높여야 한다고만 말하는 게 사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이상해서 그런 것일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좋은 리더는 What과 how가 아닌 why를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해요"
갑자기 회사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토로하게 되는 것은 얼마 전 줌 독서 모임을 통해 들었던 김민식 피디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습관의 힘>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쩌다 리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피디님께서 흘리듯이 말한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좋은 리더란 why를 알려줘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주변에서 why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더 아쉽게 느껴져서 귀에 꽂혔던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내가 why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는지도 돌아봤다. 사실 휴직 전에는 나 또한 why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못하며 일을 했다. 괜히 이유를 묻는 게 토를 단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냥 뭐든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래서였는지 why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는 것에 대해 크게 거부감이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기획의 정석>을 읽으면서 why가 얼마나 일을 하는데 중요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why가 없다면 what도 의미가 없을텐데 what만 주구장창 떠들어 대니, 납득이가 될 리가 만무하다.
real why가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여러 차례 질문함으로써 본질적인 니즈를 찾아내고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훌륭한 기획은 이렇듯 상대방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여 그 본질적인 니즈인 why에 대해 내가 말하고 싶은 what을 연결하는 일이다.
-박신영 저 <기획의 정석> 중에서
why는 글을 쓰는 일에도 연결됐다. 무슨 글을 쓰던지, 그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내가 글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였을까? 복직을 하고 나서 느끼는 회사의 문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why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보는 듯 했다. 그걸 물어보는 것은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고.
반면교사라 했던가? 그래서 나는 요즘 하는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why를 찾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큰 틀에서 경영진이 내려준 미션에 대해서는 아직 why를 찾지는 못했지만, 내가 회사에서 하는 작은 시도들에 대해서는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편이다. 스스로 답을 찾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보려고 노력 중이다.
특히 리더는 아니지만 나보다 어린 후배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더욱 신중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행히 요즘의 후배들은 나보다 더 의견을 자유롭게 내는 편이다. 가끔씩 그냥 따라와줘라는 꼰대 마인드가 발동할 때도 "솔직히" 있기는 하지만 그들과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진짜 이유를 찾고 그 속에서 무엇을 연결하려는 과정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물론 후배들이 어떻게 느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는 과정이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되고 일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매출에 대한 압박 때문에 짜증이 수시로 밀려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경험 덕분인지, 경영진에 대한 불만 덕분인지, 그래서 나는 why에 대해 더 집착하며 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why를 생각하며 일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회사에서 승진을 하거나 리더가 되는 일에는 도움이 되진 못할수도 있겠지만 나의 "직업"을 만드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어짜피 회사에서 리더가 되기는 글러먹은 상황에서 나의 것을 지키며 일하려면 이래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 속에서 후배들과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 리더가 why를 던져주지는 못할지언정 우리끼리는 why를 고민하며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즐거울 것 같다. 그리고 나같은 리더가 진짜 필요하다고 후배들이 생각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잘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회사에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후배들에게 그리고 또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습관을 같이 만들어 보고 싶은 게 솔직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