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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Mar 16. 2019

휴직하고 지리산에 왔습니다.

포도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버스에서 푹 자다 눈을 떠보니 고속도로였다. 너무 깊게 잠들었던 걸까? 어설프게 깨자마자 깜짝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식원에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별생각없이 단식원에 가겠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 그냥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별생각없이 남부터미널까지 왔고, 별생각없이 버스를 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 요즘 많이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단식원에 가고 있다는 사실에  겁이 났다. "단식"이라는 것이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내가 10일을 버틸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과 상관없이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한 진주행 버스는 사간에 맞춰 중간지점인 원지에 도착했다. 나는 단식원에서 알려준 대로 원지에서 내린 후 덕산행 버스를 갈아탔다. 그리고 주인께 전화를 드렸고 부부가 나를 덕산에 마중나와 단식원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 난 지금 지리산 유점마을이라는 곳 단식원에 왔다. 지난 일요일에 왔으니 벌써 1주일을 보낸 것이다. 굳이 이 산골 지리산 자락에 난 왜 온 것일까?



지리산 유점마을 포도단식원을 찾은 이유



어영부영 하다보니 이곳에 와 있었다. 이게 가장 맞는 이야기일 것 같다. 혹자는 실행력이 강하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실행은 어렵지 않았다. 전화번호가 내게 쥐어졌고, 용기내어 전화를 했고, 아무 생각없이 예약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가겠다고 이야기 했더니 어느새 나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생각 없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도대체 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곳 지리산에 단식하러 왔을까?


따라해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구본형 선생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포도 단식원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했다. 지리산에 있는 포도단식원에서 단식을 하며 일상의 습관을 달리 바꿔 보려했던 선생의 행동을 따라해보고 싶었다.


“이곳에서 포도만 한 번에 열 알 정도씩 하루 다섯 번을 먹고 한 달을 굶고 지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이곳을 찾아오기로 결정하고 시간을 내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음에도 지금 이곳을 가게 만드는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그를 그냥 따라해보고 싶었다. 단 열흘이라도. 그를 만나진 못하지만 그가 머물렀던 방에서 그의 생각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구본형 선생이 포도단식원에서 4주동안 머무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하던데, 그 생각이 어떻게 나왔는지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혹시 나도.. 라는 기대감과 함께!


일부러 그의 책을 한아름 갖고 오기도 했다. 좀 더 느껴보고 싶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비워내고 싶었다.


단식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배고픈 고통을 겪어 보면 뭔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나름 숨이 헉헉거리는 와중에 느끼는 것들이 좋았다. 고통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단식을 하면서도 진정한 나를 찾아보고 싶었다. 배고프다는 본능을 이겨내고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다.


단식을 하면서 내 몸에 있는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싶기도 했다. 매번 몸에 넣기만 하고 제대로 비워내진 못한 것 같았다. 몸에 쌓이는 노폐물들이 느껴졌다. 이곳에선 포도단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숯을 먹고 레몬을 마시며 몸의 노폐물들을 걸러냈다. 어제는 관장도 했다. 몸속에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비워내면 뭐든 달라지지 않을까?


비워낸만큼 새로운 무언가를 건강하게  채우고 싶다.


세상과 조금 떨어져 있고 싶었다.


이곳 지리산에 혼자 왔다.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물론 혼자라는 사실이 주는 두려움도 컸다. 혼자이기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무슨 일이 생겨도 챙겨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다. 새로운 곳이 주는 기대감보다 낯선 환경이 주는 불안감이 컸다.


불안해하는 나를 깨보고 싶었다. 이제까지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해보면서 무언가를 깨닫고 싶었다.


적당히 세상과 떨어지고도 싶었다. 항상 분주했던 일상속에서 나에대해 생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조금은 외딴 곳에 홀로 떨어져 있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싶었다. 이기적이지만 오롯이 나에 집중하며!


이곳에서 무엇을 하나요?


이곳의 생활은 생각보다 규칙적이다. 첫날 와서는 숯가루를 30분 마다 먹으며 몸의 독소를 빼냈고, 다음날은 레몬즙을 30분 마다 먹으며 몸을 정화했다. 본격적인 포도단식은 3일째부터였다. 3일째부터 나의 일상은 이렇다.


기상은 4시30분 전후로.

서울에서도 4시에서 4시 30분 정도에 일어났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여기서도 일찍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별을 보기 위해서다. 새벽마다 나가서 별을 보고 들어온다. 다행히 한겨울이 아니라 많이 춥지 않아서 한동안 서있다 와도 괜찮다.


하루는 별똥별도 봤다. 별똥별이 너무 순식간에 떨어지는 바람에 소원을 제대로 빌진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처음 보는 별똥별이었으니. 나도 이제 별똥별 본 사람이 됐다.


그리고 또 잔다. (5시30분 ~ 7시 30분)

한 시간 정도 깨어 있다가 다시 잠을 청한다. 7시 30분까지 아침잠을 다시 잔다. 아무래도 몸에 영양분이 없어서 잠을 더 자게 된다. 그냥 마음 편히 아침잠을 즐기고 있다.


산으로 나간다. (8시 ~ 11시)

첫 포도는 7시 30분에 먹는다. 열알 넘게 먹으면서 첫 끼니를 해결하고 곧장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가는 길은 경쾌하다. 맑은 하늘을 보는 것도 신나고 따뜻한 햇볕을 쐬는 것도 즐겁다. 물론 산길이 생각보다 힘들어서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한다. 하지만 호수가까지만 가면 또 편안한 휴식이 기다리기도 한다.

그곳에서 책도 읽고 쉬기도 한다. 10시 30분엔 싸온 포도를 먹기도 한다. 그렇게 나만의 오전시간을 보낸다.


책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눈다 (11시 ~ 2시)

즐거운 오후시간이다. 산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온 후에 방으로 와서 책도 보고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나눈다. 첫날엔 아무도 없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많아지니 이것저것 이야기도 나누게 되면서 이곳에 활기가 느껴진다.


책읽는 시간과 글쓰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다. 그 사이 1시 30분에 한번 더 포도를 먹는다.


냉찜질과 낮잠 (2시 ~ 3시 30분)

2시부터는 배에 냉찜질을 한다. 배에 아이스팩을 올려놓고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둔다. 포도단식엔 냉찜질이 같이 들어가야 효과가 좋다고 한다. 왜그런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누워서 냉찜질을 하면 자연스레 낮잠을 자게 된다. 책을 읽을 때도 있고, 스마트폰을 볼 때도 있지만 행동에 제약이 있다보니 잠자는 게 최고다.


관장 (5시 ~ 6시)

4시 반에 네번째 포도를 먹고 관장을 한다. 관장이 제일 고된 시간이다. 항문에 관장호스를 집어 넣고 처음엔 레몬 희석 물을 넣고 관장하고 다음엔 그냥 물을 넣고 관장한다. 몸 속에 있는 숙변을 빼내는 과정이다. 새롭게 몸을 비워내는 과정이라 하지만 정말 힘든 시간이다.


그래도 내 몸을 비워낸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는 중이다. 뭐가 빠지긴 빠지겠지?


목사님 강의 (8시 ~ 9시)

7시 30분 마지막 포도를 먹으면 하루 식사는 끝이다. 적당히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8시부터 목사님으로부터 건강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종교적인 이야기까지 섞여 있는 강의라 조금은 불편하긴 하지만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야길 듣고 있다.


취침 (10시 30분 ~)

일찍 자라고 말씀하신다. 단식기간이든 아니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건강에 좋다는 게 목사님 말씀이시다. 다행히 최근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온 터라 일찍 자는 편이다. 10시 반이 되면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규칙적으로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생각도 하고 책도 읽고 여기에서 하라는 것도 하면서 말이다.


주로 어떤 생각을 많이 하나?


맨 처음 왔을 땐 두렵고 외롭고 이런 감정들이 불쑥 불쑥 찾아오곤 했었다. 구본형 선생이 맨 처음 숯가루를 먹으며 느꼈던 것처럼 내가 여기에 잘 온걸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엔 가끔씩 두렵고 외로운 감정이 들었다. 그냥 무서웠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게 겁도 났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내 속에서 용솟음 치는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조바심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여기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들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어렵게 낸 시간인데,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한데,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료들에게도 미안한데 내가 여기서 빈손으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런 생각은 휴직 기간 내내 나를 사로잡는 생각이기도 하다. 휴직 기간동안, 우선은 2019년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리고 그런 부담감이 나를 움츠리게 하기도 한다.


빨리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이곳 생활에 적응하면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점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처음 별똥별을 보았을 때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 같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을 보며 내가 저것만 봐도 많은 것을 얻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인생에서 아무나 별똥별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다음부터 이곳 생활이 편하게 느껴졌다. 적응하다보니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었다.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이곳에 오게 도와준 아내에게 감사했고, 구본형 선생님의 책을 읽게 해준 자기혁명캠프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를 위해 도와주시는 목사님도, 사모님도 감사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 후로도 별똥별을 또 볼 수 있었다. 순간이라 소원을 빌진 못했지만 본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뿐이겠는가? 산에 오르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파란 하늘을 보는 것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순간 순간 산골에서 느끼는 경험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선물 같았다.


이 감사한 마음이 서울에서도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슬슬 여유를 찾아가고 있기도 하다. 내가 갖고 있는 두려운 감정이 지금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나를 믿고 여유를 갖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하겠는가> 작가 팀  페리스는 혁신적인 수영법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는 토털 이머젼의 창업자인 태리 레플린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책에서 정리한다. 그리고 여유가 필요한 나에게 딱 맞는 구절을 선사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고통과 시련, 역경을 쉽고 부드럽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성공이나 만족감이 아니라 오직 시련만이 삶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초조해 하지 않고 매사에 여유를 가질 줄 아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시련을 탁월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꼭 최고의 사람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시련을 견디기 위해서 굳이 초조해 하지 않고 여유를 즐기는 태도는 나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그 다음 문구가 압권이었다. 나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태리가 한 말이었다.


"빠르게 헤엄치려고 하지 않을 때, 마침내 빨라진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친다고 앞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나가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여유를 갖고 말이다. 물속에서 뜨는 것도 여유를 가지고 몸에 힘을 뺄 때 더 잘 뜨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사흘 후면 이곳을 정리하고 나간다. 벌써부터 배가 고파진다. 서울 가서 먹고 싶은 음식도 많아졌다. 일주일동안 잘 버텨온 내가 대견하다. 물론 끝까지 더 잘해야겠단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단식도 중요하지만 단식 이후의 보식도 중요하다. 기왕 몸을 비워낸 만큼 좋은 것들로 채워내고 싶은 바람도 크다.


건강한 마음도 결국 건강한 몸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때 몸의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알아가는 것 같다.


단식원에서의 일주일은 이랬다. 마무리까지 잘 하고 서울에서 이곳 생활을 다시 정리할 때는 어떤 마음이 들지 궁금하다.


15년 전 쯤 이곳에 30일 머물렀던 한 한의사가 우연히 이곳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단식하고 한참 뒤에 생각해보니 본인의 인생이 단식 전과 단식 후로 바뀌었다고 나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과연 화요일까지 이곳에 머무르고 한참이 지나 나에게도 그런 생각이 올까? 구본형 선생이 느꼈던 것처럼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까?


어떤 생각들이 훗날 이곳을 정리하면서 나를 사로잡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 감사하고 또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배고픈 것만 빼면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


그래도 오길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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