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autyisinpain Mar 23. 2019

어른이 된다는 것

2018년 6월 27일, 맑음

이 곳 내 주변 친구들은 슬슬 돈이 바닥나기 시작해 일을 찾으랴 레쥬메를 돌리랴 여념이 없다. 나는 일은 하지 않고, 집값을 내지 않는 대가로 같이 살고 있는 삼촌과 외숙모가 일을 가실 때마다 그들의 아들을 돌본다. 사촌 동생의 이름은 요엘. 한국 나이로 여섯. 천방지축에 활달하고 밝은 아이다. 물론 말을 듣지 않고 고집도 세서 내가 쉽게 지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요엘이의 싱그러운 미소를 보면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할만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쉽게 차지하곤 한다. 나는 요엘이와 시간을 보내야 할 때면, 보통 공을 가지고 밖에서 놀거나 한글을 가르치는데, 요엘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마다 느끼는 건 요엘이의 습득 능력이 좋다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가르친 말을 까먹지 않고 내뱉으려는 연습을 스스로 하는 아이라 언제는 내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요엘이 입에서 나와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요엘이는 아직 아이인지라 자기 뜻대로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쉽게 울 곤 한다. (하루에 몇 번까지 울 수 있는지 궁금해서 세본 적이 있는데 여덟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루빨리 ‘형’이 되고 싶은 요엘이에게 ‘자꾸 울면 형아가 될 수 없어.’라고 타이른다.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요즘 요엘이는 울고 있는 와중에도 "울면 형아가 될 수 없어?"라고 반문하며 울음을 그친다. 어제, 반년 하고도 석 달을 사귄 애인과 이별했다. 반년을 우리나라에서 같이 보냈고 석 달을 서로의 온기조차 느낄 수 없는 타지에서 떨어져 지냈다. 앞으로의 남은 여덟 달을 버텨내지 못할 것을 서로 자각한 나머지 입 밖으로 이별을 꺼냈다.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그리움과 아쉬움, 그간 전하지 못했던 사랑, 미련 같은 것들이 눈물과 함께 섞여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목소리가 오고 간 후, 살아생전 이런 쓰라리고 찢어지는 마음을 지녀본 적 없었던 나는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 절망하고 좌절했다. 그때였을까, 옆에서 나를 죽은 듯 지켜보던 요엘이는 나를 놀리는 어투로 말했다. “자꾸 울면 형아가 될 수 없어.” 갑자기 기가 차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섯 살짜리 동생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다. 맞다. 자꾸 울면 형아가 될 수 없다. “누나 세수하고 올게.” 화장실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가 찬 물로 세수를 했다. 그리곤 내 앞에 서 있던 한 여자를 마주했다. 내 기억엔 미소를 띠고 있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