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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Feb 26. 2024

자신을 사랑하는 법

그릇에 담아 먹는 의미


딸이 크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스스로 밥을 챙겨 먹는다는 점이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라면, 달걀 요리처럼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나와 남편이 집을 비울 때도 딸의 밥걱정을 하지 않게 됐으니, 그것만 해도 다 키운 것 같았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나갔다 들어왔더니 딸이 밥을 먹고 있었다. 역시나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 왔고, 배가 고팠는지 끓인 냄비째 그대로 식탁에 올려놓았다.      


  “00아, 그게 뭐야, 그릇에 담아서 먹어야지.”

  “귀찮잖아. 내가 먹는 건데. 설거지도 많이 나오고”

  “엄마가 항상 음식은 그릇에 담아서 먹어야 한다고 했잖아.”

  “손님도 아니고 내가 먹을 건데 뭘.”

  “아니야. 여기 담아서 먹어. 자신도 손님처럼 아껴야 하는 거야.”     




딸이 2살 되던 무렵, 그날도 육아로 무척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딸이 낮잠을 자고 잠시나마 밥 먹을 시간이 생겼다. 깨기 전에 빨리 한 끼 때워야 했다. 만들어 먹기는 힘들고, 냉장고를 여니 먹다 남은 반찬만 몇 개 있었다. 대충 몇 가지 꺼내 식은 국에 밥을 말았다. 피곤하고 입맛이 없으니, 허기만 달래면 된다고 생각했다. TV를 틀고 꾸역꾸역 배를 채웠다. TV에서는 한 정신과 의사가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척 오래전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의사의 요점은 이러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한 가지 알려드릴게요. 보통 어머님들은 남편과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드시거나 주방에 서서 대충 드십니다. 절대 그러시면 안 돼요. 우리는 손님이 오면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먹을 때는 그렇지 않아요. 아무 그릇에나 담거나, 서서 먹거나, 먹다 남은 것은 아깝다며 먹습니다. 자신을 손님처럼 존중하세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혼자 밥을 먹을 때, 집에서 가장 아끼는 그릇에 담아 드세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실천하세요.”     


의사의 말을 듣자, 식탁에 놓인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냉장고에서 꺼내놓은 반찬통, 식은 국과 밥. 나도 거의 매일, 피곤하고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먹었다. 그릇에 담는 것도 귀찮아 남은 반찬과 밥을 비빔밥처럼 비벼 먹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나 지인이 오면 달랐다. 가장 아끼는 그릇과 컵을 꺼냈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담아 대접했다. 내가 예뻐서 산 식기들을 정작 내가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바보처럼 느껴졌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서 누구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까.  

   

방송을 본 이후로 손님용 식기를 꺼냈다. 아무리 간단한 음식이나 간식이라도 꼭 그릇에 옮겨 담아 먹었다. 커피를 마실 때도 그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컵을 골랐다. 점점 나의 취향과 기분을 알게 됐고 나를 알게 되니 육아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노력했다. 그렇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작은 실천이 점점 자존감을 키우는 토대가 되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중년이 되어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며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나로 살아가게 하고 있다.

딸은 요즘도 투덜거린다. 지금이야 설거지양이 늘고 귀찮고 엄마의 잔소리 같을 것이다. 그러나 후에, 잔소리 같았던 말의 진심을 알 것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그러니 딸아, 그릇에 담아 먹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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