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예찬
오후가 되니 식곤증이 몰려온다. 부드러운 플랫 화이트를 마시고 싶다. 날도 춥고 무척이나 귀찮지만 나가야 한다. 무엇도 나의 커피 유혹을 막을 수 없으니 말이다.
난 커피를 좋아한다. 정말 좋아한다. 만약 소울푸드가 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커피라고 대답한다. 아침에는 연한 아메리카노 반 잔을 마신다. 점심은 무조건 라테 종류, 요즘은 특히 풍부한 거품과 쌉쌀한 맛이 매력적인 플랫 화이트를 마신다. 오후 3~4시 사이, 졸리거나 무감각해질 때는 다시 아메리카노 반 잔을 마신다. 여행을 가면 아주 주관적(카페 분위기, 잔 등)으로 괜찮은 카페를 찾아간다. 방송이나 주변에서 새로 오픈한 카페가 있다고 하면 가본다.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사람은 내가 커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많을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커피의 지식은 남들이 아는 그 정도, 커피의 종류나 이름 아마 딱 그 정도일 것이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몰입하는 순간 때문이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속속 생기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는 일명 봉지 커피가 대중적이었고, 나 역시 달고 고소한 매력에 하루에 한 잔 정도 마셨다. 간혹 친구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저 쓴 걸 어떻게 마시나 의아했다. 점점 프랜차이즈 대형 카페가 많아졌고 사람들이 커피를 들고 다니는 것이 익숙해진 풍경이 되었지만, 커피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대부분의 초보 엄마가 그렇듯 나도 고단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로 인해 행복했지만, 나만의 시간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흐릿한 날씨 같은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딸이 7살이 되고 유치원에 가자, 오전에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경단녀에, 난치병(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다시 일을 찾는 건 어려웠다.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았고 잠깐이지만 무언가 배우고 싶었다. 어느 날,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커피 강좌 안내문을 보게 됐다.
"드립커피,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3개월에 완성!"
눈에 띈 안내문에, 커피도 좋아하지 않는 난 무턱대고 등록했다. 아마 다른 강좌를 봤어도 그랬을 터, 난 그저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고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첫 수업 날 딸을 유치원에 보내고 서둘러 문화센터에 갔다. 극 I 성향 내향인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새로운 장소도, 새로운 사람도 낯설어하지 않았다. 강의실에 퍼지는 향긋한 커피 향은 마음에 삐죽삐죽 자라난 가지들을 없애는 것 같았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이 됐다.
원두를 굽고, 그라인더에 천천히 간다. 드리퍼에 간 원두를 담고 천천히 물을 붓는다. 서서히 물에 젖는 커피가 고소한 향을 쏟아내면 난 아득한 어딘가로 빠져든다.
커피를 내리는 짧은 시간은 완전한 몰입의 시간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걱정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물을 따르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에 닿아 울릴 뿐이다.
잠깐의 시간이 주는 몰입에 행복했다.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도 몇 번씩 연습했고 몰입에 취해 열정이 샘솟았다. 커피의 매력에 빠져 3개월 과정을 끝내고 전문가 과정을 찾았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좋아하는 일'로 만들고 싶었다. 배우는 내내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안과 검진을 하니 안압이 높았다. 26년 동안 복용하고 있는 소량의 스테로이드제와 다량의 카페인 섭취가 원인인 거였다. 커피를 줄이라는 의사의 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로 만들고 싶었던 생각도 접어야 했다. 난치병 환자인 나에게 커피는 '좋아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돼버렸다.
이후로 커피와 관련된 일을 찾는 것은 포기했다. 하지만 커피는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마시는 것 말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커피잔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잔이 있으면 해외에서 구입도 했고, 중고 매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커피잔이 늘어나니 장식장도 구입해야 할 정도였다. 매일의 기분에 따라 커피잔을 선택하고, 손님이 오면 커피잔을 골라 커피를 대접한다. 가끔은 커피 관련 행사에 가서 커피 세계를 마음껏 즐긴다. 새로 오픈 한 카페가 있으며 찾아가 마음에 드는 원두를 산다. 얼마 전, "캐나다 국민 커피, OOO 한국 상륙"이라는 기사를 봤다. 남편은 캐나다 출장 때 가봤지만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야, 그럼 가보자. 난 캐나다 커피는 마셔본 적이 없네. 진짜 궁금해!" 새로운 커피에 대한 기대로 발길을 재촉했다. 가는 길에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카페도 들러 두 커피를 비교하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두 가지 커피를 마시고 각자의 평가를 나눴고 그 하루는 커피로도 충만했다.
커피메이트인 남편과 친구들은 "왜 그렇게 커피를 좋아해?"라고 묻는다. 당연히 커피의 맛을 좋아한다. 고소하면서 쌉쌀한 맛, 구수한 향, 커피 자체가 가진 매력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실 때, 카페를 찾아갈 때, 커피잔을 고를 때, 그 순간 나에게 집중하고 몰입하면 온전히 나만 존재하고 나를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을 표현할 적확한 단어는 없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고 했다. 커피와 관련된 일을 찾으려던 희망이 좌절됐다. 그러나 커피에서 느낀 몰입의 순간은 다른 즐거움을 찾게 했다. 커피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난 커피를 마시고, 몰입하고, 나를 느끼고, 또 다른 삶을 만들었다. 그래서 난 커피가 좋다.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