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시간과 관계의 깊이는 다르다.
정서적 과정에 따른 관계로서 행동이나 사고방식보다는 감정과 연관된다.
상대와 함께 있을 때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특징이다.(…) 알고 지낸 기간, 연락 빈도, 연락의 지속 시간 등 대리 척도들로 친밀도를 평가하는 유형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매주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친하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깊이 있는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칼린 플로라
우린 많은 사람과 시간을 공유한다. 함께 공유한 시간은 상대의 변화된 성격과 환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비록 그 시간이 관계의 유지와 단절을 결정하더라도 우리에겐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유한 시간이 과연 진실된 시간이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만약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관계이거나 거짓된 마음을 가진다면 공유한 시간이 길다 해도 관계의 깊이는 결코 깊은 것이 아니다.
동창 A에게서 전화가 왔다. A는 5년 동안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자녀의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A는 과감히 휴직을 했고, 미국에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입학시켰고, 다시 복직을 하며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그녀는 자신의 소식을 전하며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몇 명에게 그녀의 귀환소식을 전하며 모임 날짜를 잡았다.
5년 만에 만난 A는 변함없었다. 난 A의 그간의 삶이 궁금해 많은 질문을 했고, 대화의 주제는 A의 미국생활과 자녀 교육에 집중됐다. 모인 인원 모두 결혼을 했으나 B만 아이가 없었다. 대화주제의 편중이 심한 건 어쩔 수 없었고 한국과 미국의 교육환경,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런데 B는 A의 얘기와 반대되는 의견을 자주 얘기했다. B로 인해 대화는 중간중간 끊겼고, 결국 불편한 분위기로 어색한 시간이 발생했다.
B와 나는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이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내 주거지가 가까워지면서 돈독한 사이가 됐다. B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다. 신념이 강하고, 그것과 반대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거침없이 말한다. 학창 시절, 그녀는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조금은 내성적인 성향이었다. 그랬던 B는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대학원을 다니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다. 점점 자신감이 높아졌고, 그녀의 자신감은 과장된 액션과 표정을 별책부록으로 가지게 했다. 그녀의 변화가 외적 자신감과 지적 허영심인지, 아니면 어떤 결핍에 의한 불안인지 불분명했다.
언제부턴가 B는 나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내가 얘기를 하면 끊기도 했고,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려고 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겨 축하받고 싶거나 공감받고 싶어 얘기하면 질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병에 관한 얘기나 힘들고 안 좋은 이야기는 시큰둥했다. 못내 그녀의 모습에 섭섭하긴 했으나 표현하지 않았다. 말 많고 유머러스 한 B를 만나면 즐겁고 재미있지만 불편한 시간 또한 늘어갔다. 난 아이가 없는 그녀를 위해 되도록이면 아이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만남의 시간은 점차 B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어느 순간, B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임에서 B는 불안해 보였다. 대화의 흐름을 끊고 자신의 얘기를 하며 흥분했다. 과장된 표정과 말로 웃음을 만들었다. A의 말과 반대되는 의견을 자주 얘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잠시 B가 화장실을 간 사이, A는 물었다.
“B가 나랑 안 맞는 건가, 아님 원래 그랬나? 대화가 잘 안 되네.”
불안한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고 싶어 했다. 난 불안하고 흥분한 B가 불편했다. 이미 변화된 그녀를 알고 있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만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관계한 시간이 길고, 변하는 그녀를 봐왔다. 변했어도, 불편해도 같이 보낸 많은 시간은 그녀와의 관계가 깊다고 여기게 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B의 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진정한 친구라면 그녀에게 말해야 하는 건가 고민됐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타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점점 그녀와의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공유한 시간과 관계의 깊이는 비례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간이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기본값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B와 공유한 시간은 우리의 관계 깊이를 결정하지 못했다.
B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나에게 한다. 나는 그러지 말자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자고, 우리의 관계를 이어가자고.
그러나 나에게 하는 말은 마치 돌려주지 못한 빚처럼 오히려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결코 쉬운 관계는 없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변하기에 더욱 어렵다. 또한 공유한 시간만큼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길 바라는 건 욕심일테다. 그러니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