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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Mar 07. 2024

천천히 갈 결심

나만의 속도로.



빠르다. 너무 빠르게 세상이 변한다. 난 인스타계정이 있지만 하지 않는다. 일을 놓은 지 오래되니 컴퓨터도 잘 다루지 못한다.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할 때는 긴장을 하기도 한다. 노안으로 버벅거리며 화면을 터치하면 딸은 답답한지 자신이 나서서 처리해 준다. 아직 배울게 많은데 쳇 gpt라는 신세계가 있다고 한다. 나는 고작 한 발짝 뗐는데, 세상은 열 발을 앞서간다. 이런 세상에서 난 천천히 갈 결심으로 산다.




예전에는 세상의 속도에 맞추고 싶었다. 젊은 시절은 일과 사회적 위치가 있으니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세상과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질병을 가진 후, 세상의 시간은 나와 다르게 흘렀다. 

딸을 낳고 통증은 수시로 찾아왔고, 복용하던 약은 내성이 생겨 효과를 보지 못했다.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주사제와 약을 바꿔야 했다. 병과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고 몸은 변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호기심 많은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이런 기질은 양날의 칼이 되었다. 타고난 성향 덕에 육아도 성실히, 취미생활도 놓지 않았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니 주변사람들은 내가 아프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아픈 날이 많아지고 손의 변형이 시작됐다. 몸은 변해가는 데 스스로 변해가는 나를 외면하고 세상의 속도를 쫓느라 허덕거렸다. 


질병이 있는 몸으로 세상의 속도로 사는 건 거친 바닥을 맨발로 걷는 게 아닌가. 땅바닥의 돌도, 주변도 보지 않고 뛰어가니 남는 건 상처뿐이었다.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전시회
[구본창의 항해] 전시회 


나만의 속도를 찾은 건 독서를 통해서다. 종종 미술 관련 책을 읽으며 미술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책을 통해 얻은 호기심으로 전시회를 갔다. 책에서 본 화가의 작품을 직접 보며 느낀 감동은 무척 컸다. 


시선이 머무는 작품을 만나면 한참을 감상했다. 어두운 전시장 안, 작은 조명아래 작품이 나만의 것이 되는 것 같았다. 그 앞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면 세상이 천천히 흘렀다. 그 속도에 맡겨진 나는 가장 편안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수시로 전시회를 찾았고, 체화되는 시간의 흐름이 '나만의 속도'를 인지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가끔은 뛰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젊음을 뿜어내며 달리는 사람, 열정적으로 배움을 실천하는 사람, 거침없이 도전하는 사람... 빠른 속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속에 들어가 같이 달리고 싶다. 다시 일을 찾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친구들을 보며 아프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에 마음을 뺏기고 만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에 흔들릴 때, 천천히 갈 결심을 떠올린다. 전시회를 찾고,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며 나만의 방법으로, 나의 속도로 천천히 가자고.


오늘도 난 천천히 갈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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