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고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주방 창문을 여니 비가 내린다. 매일의 루틴대로 남편과 밥을 먹고 서둘러 포도에게 비옷을 입힌다. 현관을 나서니 집안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비가 꽤 세차게 내린다. 축축한 땅에 발을 딛는 걸 싫어하는 포도는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나도 군데군데 고인 물이 튈까 천천히 발을 뗀다. 맨발도 아니면서, 마치 빗물에 흠뻑 적어 축축하고 찝찝했던 발의 기억이 밀려와 조심스럽다.
축축한 느낌이 슬금슬금 몸에 스며들며 문득, 딸과의 일이 떠올랐다. 딸이 2살가량 되었을 때로 기억한다. 어린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이곳저곳을 다녔다. 주변에 별다른 놀이터가 없었던 터라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자주 갔다. 철봉 아래 모래터는 동네 아기들의 놀이터였다. 딸은 모래 밟는 것을 싫어했다. 보통 아기들은 모래 촉감을 좋아하는데 딸은 만지려 하지 않았고 발에 닿는 것은 더 싫어했다. 유별난 것 같아서 모래만 보면 신발을 벗겼고, 축축한 모래의 느낌을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겁 많고 조심스러운 딸이 다른 아기들과 다른 게 걱정스러운 초보엄마였다.
그날도 싫다는 아이를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괜찮아, 밟아봐. 어때? 느낌 좋지 않아?”
“저기 친구 봐봐, 모래 가지고 논다. 너도 해봐. 괜찮지?”
이런저런 말로 달랬지만 딸은 울었고, 난 짜증으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도대체 얘는 왜 이러는 거지?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른 거야?”
5살 무렵, 남들도 다 가르치는 한글을 가르치려 했지만 딸은 관심이 없었다. 학습엔 때가 있다는 말과 비교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아이를 모래판에 내려놓았고, 글자에 관심 없는 아이에게 학습을 하려 했다. 타고난 기질과 딸의 학습 속도를 무시했다. 나의 불안감은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와 평범이라는 불분명한 기준으로 생겼다. 그때, 한글에 관심이 없는 아이를 보며 깨달았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자. 불분명한 평범의 기준이 아니라 확실한 딸의 속도를 기준으로 하자."
이후로 놀이, 학습 모든 부분에서 딸의 속도를 따라갔다. 글자에 관심이 생긴 7세에 한글을 시작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혁신 대안형 학교를 보내며 졸업할 때까지 학습지나 학습과 관련된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딸은 자신의 학습 속도로 공부하며 자기 탐구 시간을 가졌고, 지금은 대학에 입학하여 본인이 좋아하고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평범이라는 말은 함정이다. 평범의 기준점은 불확실하고 개인의 차도 크다. 우린 너무나 쉽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하고, 타인이 만들어 놓은 평범함을 쫓기 위해 경쟁하며 싸운다. 만약 이 평범이라는 함정에 빠졌더라면 나와 딸은 허우적거리며 불행하지 않았을까.
내 아이와 나의 속도가 기준이라는 생각과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본인의 기준과 속도로 살아간다면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함정에 빠져 있을 누군가가 말하고 싶다.
"평범이라는 함정에서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