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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May 02. 2024

카페에서 맛본 매운맛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한다. 커피를 좋아하니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는 건 당연하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카페 선택에 조건이 생겼다.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곳, 거기에 커피도 맛있어야 하고 집에서 멀어서도 안된다.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고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내 카페다.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카페다 보니 가격이 저렴하고 공간도 넓고 쾌적하다. 오픈시간에 가면 한적하고 집 같은 안정감이 들어 집중이 잘 되니 자주 가게 된다.




오전시간 이용객은 대부분 여성이다.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거나 개인적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 마주치는 한 무리의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은 오전 운동이 끝났는지 항상 운동복 차림에 활기찬 모습으로 들어온다. 그중 한 사람의 목소리가 유독 귀에 꽂힌다. 1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모여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만 거슬리는 이유는 하이톤의 찢어지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녀가 웃기라도 하면 카페 안이 울리고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다. 


며칠 전, 브런치 연재도 해야 하고 써야 할 글도 있어 마음이 급한 날이었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 들어서니 글이 잘 써질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녀들이 오지 않길 바라며 작업을 시작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노트북 위에서 춤을 추듯 현란하게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그녀들이 나타났다. 낭패다. 아직 절반도 못 했는데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커피도 다 마시지 않았기에 서둘러 이어폰을 꺼내 귀에 꾹 눌러 끼고, 마음을 다잡았다. 마치 전투를 앞둔 병사가 된 듯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리에 앉은 그녀들은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어폰 볼륨을 높여도 소리는 귀에 꽂혔다. 하이톤 그녀의 목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과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와 머리를 흔들었다. 레벌 10의 매운 음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카페에서 맛보는 매운맛에 정신이 없었고 서둘러 그녀들과 떨어진 구석진 자리로 옮겼다. 




사람들은 다수일 때 용감해진다. 그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라면 다수의 힘을 보이기 위해 목소리도 커야 한다. 반대로 편안한 개인적 관계의 사람들이 모이면 주변을 살피고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보통은 사적인 대화가 오가고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떠들썩한 분위기에 취하면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타인을 배려하는 생각도 놓치기 쉽다. 나 역시도 가족과 친구들이 모이면 어느 순간 말이 많아지거나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분명히 나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나를 반추해 보니 무턱대고 비난할 수도 없었다. 마치 매운 음식을 먹고 속이 쓰려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그녀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생각하며 반성하게 됐다. 또다시 그녀들과 마주쳐 매운맛을 보고 싶진 않지만 에세이 소재를 제공해 줬으니 조금은 고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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