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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May 09. 2024

꿈은 꿈으로 끝날지라도


공원에 홀로 서 있다. 왜 그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비둘기 떼가 나타나더니 내 머리 위를 빙빙 돈다. 

"어우 뭐야. 내 머리로 비둘기 비듬 떨어지는 거 아냐?" 잔뜩 어깨를 웅크리고 얼굴을 찌푸린다. 

순간, 한 마리가 내 등 뒤로 날아와 어깨에 앉으려 한다. 으악!


꿈이다. 비둘기가 몸에 닿을까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들고 <비둘기 꿈 해몽>을 검색한다. 비둘기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 때문인지 기분이 영 안 좋다. 분명히 안 좋은 꿈일 텐데...

 

“비둘기 꿈, 비둘기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로 비둘기 꿈은 흉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비둘기는 명예, 권력, 재물, 업무들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아 길몽의 성격을 띤다."


길몽이라고? 찝찝한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침밥을 먹으며 “자기야, 오늘 꿈이 좋아. 로또 사야겠어. 어디서 팔지?” 난 한껏 들떴고, 남편은 좋은 꿈이면 자기에게 팔라고 한다. 길몽이라는 해석에다 남편의 한 마디까지 더해지니 봄날 꽃잎이 날리듯 마음이 기대로 부풀었다. 




서둘러 차를 몰고 복권 판매방을 갔다. 남편과 함께 사본 적은 있었지만 복권방을 혼자 들어가려니 어색했다. 어색한 기분이야 찰나였고 꿈이 떠올라 목소리가 커졌다.  “사장님, 자동 만 원어치 주세요!” 사장님 손에서 나에게로 전해진 조그마한 종이 2장. 아, 이게 뭐라고 이렇게 행복할까 싶어 실소가 나온다. 며칠 동안 난 기대와 희망으로 즐거울 거다. 세상에 이보다 소중한 게 있을까 조심스레 지갑 속에 넣으며 헤벌쭉 웃는다.


살아오며 몇 번 길몽을 꿨다. 노동이나 노력 없이 무언가를 얻어 본 적 없고 기대도 하지 않지만 기분 좋은 꿈을 꾸면 재미 삼아 복권방을 갔다. 결과는 뻔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 하는 현실로 다가왔다. 복권 당첨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 잠시나마 즐겁다.  


빅터 프랭크 같은 이는 인간은 이성으로 사유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받는 인간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더 중요한 측면이라고 과감하게 말하며 ‘호모 파티엔스’라는 명칭을 제안한 바 있다. 인간은 고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해내기도 한다. 환자는 견디는 사람이다. 그들은 고통을 받으면서 인생의 비참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고통을 견디면서 인간의 숭고함을 입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전에는 없는 동사인 ‘고통하다’를 발명해 내고, ‘호모 파티엔스’를 ‘고통-받는 인간‘이 아니라 ’ 고통-하는 인간‘이라고 옮겨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중


진료가 있는 날이면 길몽을 꾸고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는 것처럼 소원한다. 의사 선생님에게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가 나왔다는 말을 듣길, 그것도 아니라면 류마 인자가 내 몸에서 사라졌다는 말을 듣길,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기대한다. 26년의 시간은 행복과 고통이 끝없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은 고통이었다. 약으로도 가라앉지 않는 통증에 입술을 깨물었고, 사라져 가는 손가락 연골과 울퉁불퉁 튀어나온 뼈결절을 보며 고통-받는 인간이 되었다. 

난 조금씩 고통을 참고 참아 깊이 침전되어 잿빛이 되어버린 마음을 꺼내는 중이다. 내 몸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기생한 류머티즘 관절염에 이젠 공존하자고 손 내미는 중이다. '고통-받는 인간'을 버리고 '고통-하는 인간'이 되어 감당하고 이겨내는 고통-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




우린 고통과 고난에 맞서야 하지만 극복하고 이겨낸다면 맑게 갠 하늘 같은 날들을 맞이할 수 있다. 산다는 건 이런 날들의 연속이다. 여전히 난 난치병 환자지만 길몽을 꾸고 산 복권 2장과 봄날의 찬란한 햇살과 바람에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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