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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Apr 18. 2024

위로받는 맛


에세이를 쓰며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내 이야기를 꺼냈다. 이전에는 병에 대한 아픔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이 힘들었다. 건강한 사람인 듯 가면을 쓰고 사는 동안 마음속 우울감은 서서히 커졌다. 고여있는 물이 점점 탁해지고 이끼로 뒤덮여 말라가듯 내 자아를 잊게 했다. 

점점 쓴다는 행위에서 오는 치유의 힘을 느꼈다. 과거의 아팠던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고 꿈을 만들어 갔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나를 모르는 불특정인에게 이야기를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라이킷의 하트가 위로가 되고, 위로는 질병에 짓눌려 납작해진 마음을 서서히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어렸을 때, 내성적 성향이 강한 나는 관계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엔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무리 속 중심에 있었다. 항상 친구들의 고민을 듣고, 위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소란스러웠지만 즐거웠다.  


고등학교 때, 시험기간이 되면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공공도서관으로 갔다. 10명가량의 친구들이 몰려다니니 말도 탈도 많았다. 더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몇 개의 그룹이 만들어졌고, 가끔 다툼도 생겼다. 그룹끼리의 오해. 여고생들의 시기와 질투 같은 유치 하지만 그때만큼은 중요했던 감정싸움은 수시로 발생했다.

난 항상 중재자 역할이었다. 양쪽에서는 나를 붙들고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듣고, 조언하고, 위로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디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고 오해를 살만한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재자 역할은 더 자주 주어졌고 친구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었다. 

그날도, 매번 그랬듯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양쪽을 오가며 친구들의 얘기를 들었고, 울먹이는 친구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사건은 중재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애써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울고 있는 친구를 보다가 울컥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목을 타고 올라온 열기가 눈물로 변하며 뚝뚝 떨어졌다.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데 난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친구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뛰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눈물을 쏟아냈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외롭고 힘든 건 난데, 난 누구에게 위로받아야 하지?"


친구처럼 나도 누군가를 붙잡고 펑펑 울고, 위로받고 싶었다.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느라 정작 나에 대해, 나의 감정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위로받지도 못했다. 


관계의 양적 비율은 결코 행복의 비율과 동일하지 않았다. 풍요 속의 빈곤. 이 관용구는 그 시절 나의 모습이었다.  난 혼자 이겨내는 것에 익숙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야 했다. 씩씩해야 했고 웃어야 했다. 외롭고 힘들면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거나, 화풀이하듯 쇼핑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다녀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병이 생겨 통증으로 아프고 손에 변형이 와서 속상하고 힘들어도 말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듯, 아픈 건 난데, 위로받아야 하는 건 난데, 위로받고 싶었는데, 난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었다.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고 요즘은 친구들과 독자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항상 위로해던 내가 위로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문자를 받는다. “아프다는 글 읽었어… 괜찮은 거야?” 어느 날은 전화가 온다. “몸은 어때? 작년에 위경련으로 힘들었잖아. 요즘은 괜찮아?" 어떤 친구는 만나자마자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네 손을 한 번도 유심히 본 적이 없더라. 이렇게 아팠었구나.” 어떤 친구는 말한다. “언제나 씩씩하고 밝아서… 네가 아픈 걸 알면서도 인식하지 못했어. 오늘은 괜찮아?”




요즘 나는 위로받는 맛에 빠져 산다. 그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말들이 나의 귀를 타고 들어와 내 등을 토닥이고 나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말들이 위로가 되어 나를 치유한다. 위로로 따뜻하게 달궈진 마음이 나의 심장을 뜨겁게 만든다. 삶에 희망을 불어넣었고 꿈을 꾸게 한다. 위로만 하던 내가 위로받는 사람이 되니 일상이 선물같이 느껴지고 새삼 행복함이 밀려온다. 위로받는 맛, 그것은 달콤하고 행복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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