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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록 Oct 31. 2024

오래전 형광등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는, 장난기를 주체할 방법이 없는 예닐곱 살 문수에게, 키가 크면 만질 수 있는 것이 늘어간다는 사실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감각, 문고리를 돌릴 수 있게 되었고 ‘탁’하고 전등 스위치를 켜는 데도 성공했다. 그것은 환희로운 순간이었다. 


문수가 처음 외갓집에 갔을 때였다. 외할아버지께서 형광등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시니, 

‘딸깍’

묵직한 소리가 났다. 거실은 노오란 조명으로 바뀌었고, 문수의 호기심도 딸깍, 켜졌다. 문수는 아무리 팔을 뻗어보아도, 뛰어올라 보아도 줄이 손에 닿지 않았다. 역부족이었다. 외할아버지께 만질 수 있게 해달라 졸라보았지만, 곧바로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다. 문수는 그 감각이 너무나도 궁금한 나머지, 밤새 귀에서 딸깍, 딸깍, 형광등 소리가 맴돌았다. 

다음 날 아침, 기회가 왔다. 어른들이 오일장에 가신다는 얘기를 듣고, 문수는 자는 척 꼼짝하지 않았다. 결국, 집에 홀로 남겨지는 데 성공한 문수는 곧바로 형광등 줄을 잡아당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집 안 가구를 쌓아 계단을 만들어야겠다는 나름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성공이었다. 밥상 위에 작은 밥상, 그 위 의자를 올려 발판으로 삼고, 올라서서 팔을 뻗었더니, 줄을 잡을 수 있었다. 

‘딸각’ 

들어와 있던 조명이 꺼졌다. 문수는 순간 무서웠지만, 다시 당겼더니 조명이 켜져 안심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딸각. 어제의 노오란 조명이 들어왔다. 딸각, 딸각, 딸각. 이 감각이 너무 재미있고 신기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했다. 그렇게 5분쯤 잡아당겼을까, 갑자기 조명이 켜지지 않았다. 문수는 무서웠다. 아침이었어도, 집안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기에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떨렸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실내로 들어오는 옅은 아침 빛 덕분에, 발밑 가구의 윤곽이 조금 보였다. 그러나 문수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내려갈 생각을 하니 넘어질까봐 두려웠고, 기다리자니,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무서웠다. 인생 첫 진퇴양난이었다. 문수는 눈물이 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저 훌쩍이고 있던 그때, 문이 열렸다. 

문수의 예상과는 다르게, 어른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외할아버지는 문수의 의중을 알아채신 듯 웃음을 터트리셨다. 엄마는 문수를 낚아채듯 안아 바닥에 내려놓았고, 외할아버지는 어디선가 새 형광등을 가져와 손쉽게 교체하셨다.
 

다시 노오란 조명 아래에 둘러앉아, 온 가족이 함께 맛있는 과일을 먹었다. 외할아버지는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라 말씀하셨다. 장롱 맨 위 칸 연양갱을 꺼내 먹기 위해, 피라미드로 하나 되던 ‘독수리 오 형제’를 추억하셨다. 물론, 그 계획을 세웠던 사람은 문수의 엄마였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과일을 앞에 둔 채 추억 바구니에 흠뻑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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