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시간을 이코노미 석에서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문수의 11명의 일행은 비행기가 구름을 통과할 때 쯤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간의 전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기 몇 시간 전에도 연습을 강행했기 때문에 체력이 바닥났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며 그들의 피와 땀을 고스란히 보았기에, 문수는 마음 속 깊이 그들을 동경했다.
마침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아직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입국심사를 위해 줄을 섰는데, 심사관으로 보이는 흑인이 문수와 그의 무리를 한줄로 세워놓고 의심의 눈초리로 “웨얼 아 유 프롬?”하고 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문수의 일행의 모습이 돋보이긴 했다. 동양인 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몸과 각종 문신, 독특한 걸음 걸이, 패션 등 심사관 눈에 띄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팀 리더 재황은 깐깐하고 완고해 보이는 흑인 심사관의 물음에 당황하지 않고,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맞받았다.
“위아 코리안! 코리안 비보이!”
“비보이? 아 유 비보이?”
“예스! 위 아 코리안 베스트 페이머스 비보이 팀 인스타일 크루!”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심사관은 동그랗고 큰 눈을 몇번 깜빡이더니 거만한 자세로 턱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
“오케이! 쇼 미!”
문수는 어리둥절했다. 졸지에 흑인 심사관, 입국심사를 거치는 많은 사람 앞에서 이상한 춤판이 벌어진 것이었다. 재황은 멤버들을 잠시 불러 모아 짧은 한마디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즐기자. 까짓꺼!”
문수는 신이나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다른 심사관에게 주의를 받았다. 이곳은 촬영금지 구역이었던 것이다.
재황의 춤이 시작되었다. 리더는 역시 리더였다. 흑인 심사관에게 보란듯 눈을 마주친 채, 곧바로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나이키 프리즈(다리 모양이 나이키 상표를 닮아 지어진 기술 이름, 일종의 포즈)를 했다. 그러더니 두 팔을 이용해 콩짝 콩짝 뛰기를 반복하며 다리 보양을 변형시켰다. 거기에 맞춰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조심스레 호응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끝이 아니었다. 재황은 어느새 한쪽 팔 만을 이용해 좀전의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더욱 놀라운 건 계속해서 심사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마치 끼 넘치는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며 사람을 놀리는 모습과 같았다. 다시 프리즈로 마무리 동작을 한 후 재황은 여유있게 팔짱을 낀 후 심사관을 바라보았다. 이래도 안들여 보낼래?’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조용하지만 장내를 가득 채우는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여운이 가시지 않았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중을 향했다. 누군가 공중에서 덤블링을 하며 새처럼 등장한 것이다. 팀 막내 재훈이었다. 그는 아직 고등학생임에도 출중한 실력으로 리더의 눈에 띄게 되었다. 키가 작고 순둥순둥한 귀여운 아이가 춤을 출 때 만큼은 카리스마 가득찬 눈빛으로 돌변하는 모습에 문수는 볼 때마다 놀랐다. 그 눈빛으로 장 내를 한바퀴 돌며 모든 시선을 집중시킨 재훈은, ‘토마스 플레어’(기계체조 동작에서 차용한 기술)를 시전했다. 기계체조 선수들은 규칙 속에서 이 기술을 반복하지만 재훈은 계속해서 다른 기술로 연결했다. ‘에어트랙’(토마스 플레어의 응용 기술로 한손으로 몸을 지탱하는 상태에서 몸을 회전시켜 반대쪽 손이 몸을 지탱하게 하는 기술)이 몇번이나 반복 되자, 장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와우! 인크레더블!’등의 환호를 했다. 재훈은 ‘나인틴 나인’이라는 기술로 황홀한 마무리를 했다. 한손으로 물구나무를 선채 빠르게 다섯바퀴를 회전한 것이다. 이젠 숨길수 없는 장내 사람들의 환호가 터졌고, 문수는 심사관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그마저도 감탄을 숨길수 없어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문수는 이 모든 상황을 카메라로 담지 못한다는 사실이 큰 한이 되었다. 이 순간만 잘 담아도 더할나위 없는 콘텐츠가 만들어질텐데, 하는 생각에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이 순간, 이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그 어떤 곳 무대에서도 볼 수 없는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도 없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눈부신 자아를 드러내는 그들과 지금 이 순간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주성이의 헤드스핀은 지금까지의 퍼포먼스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심사관은 다시 문수의 일행을 불러모았다. 그의 손에는 도장이 들려있었다. 여권을 앞에두고 그는 만족스런 미소를 띄며 소리쳤다.
“오케이! 웰컴 투 유.에스.에이!”
(도장)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