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요일 늦은 오후, 문수는 길에서 단짝 친구 민준을 마주쳤다.
-민준아! 어디 갔다와?
-요 앞에 PC방 생겼잖아. 나 거기 다녀오는 길이야.
-PC방? 그게 뭔데?
-한 방에 컴퓨터 엄청 많은 곳인데, 다 게임하는 사람밖에 없어.
-응? 그런 데가 있어? 컴퓨터 학원 같은 데야?
-아니 아니! 오락실이랑 비슷해! 전부 ‘스타’하고 있어.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환상이 컸던, 집에 컴퓨터가 있는 민준이 부러웠던 5학년 문수에게, PC방이 생겼다는 소식은 큰 설렘이었다.
-그럼 돈 내고 컴퓨터 게임 하는 거야?
-응! 원래 천 원인데 오픈 이벤트 해서 한 시간에 오백 원이야!
-우와! 나도 가보고 싶다.
-좋아. 내일 학교 끝나고 가자!
곧 생애 첫 PC방이 될 ‘ESC PC방‘을 갈 생각에 문수는 밤잠을 설쳤다.
#2
문수가 등교하니, 반 친구들은 이미 PC방, 스타크래프트 얘기로 한창이었다. 민준은 어제 PC방에서 있었던, 자신의 ‘테란’과 어느 아저씨의 ‘저그’ 대결 이야기로 아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저그’좀 해봤다는 병현이 민준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야. 구라치지 마. 어떻게 마린 세 명이 러커를 이기냐? 바로 전멸될 텐데?
그러자 ‘테란’에 자신 있어 하던 민준이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며,
-무슨 소리야. 그건 컨트롤 못해서 그런 거야. 하긴, 컨트롤을 알 리가 없는 너는 잘 모르겠지만.
-어쭈, 너 자신 있냐?
-저그 좀 몇 번 해본 거 같은데, 어떻게, 오늘 한 판 붙어!?
서로 자신있다며 우기는 병현과 민준은 반 아이들을 흥미진진하게 했다. 사실, 문수는 스타크래프트를 민준의 집에서 두어 번 해본 게 전부라, 마린, 러커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잘난척쟁이 병현의 코를 민준이 납작하게 해주길 바랬다.
-그래 둘이 붙어봐. 재밌겠다.
방과후, 둘의 대결을 구경할 열한 명의 관객이 생겼다.
#3
둘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5교시가 반쯤 지날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야, 박민준! 너, 눈이 왜 그래!?
순간, 민준의 짝 유진의 외침으로 반 분위기는 귀신이 지나간 듯 얼어붙었다. 빨갛게 물든 민준의 눈을 보자마자 모두 하나 같이, “으~ 가까이 오지 마! 저리가” 하며 몸을 피했다.
‘드르륵’
책상,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민준을 주위로 반원이 그려졌다. 선생님은 왠지 더 흥분한 목소리로,
-민준아! 양호실 다녀와. 혹시 눈병이면 조퇴하는 게 좋겠다.
#4
쫓겨나듯 교실에서 나간 민준은 5교시가 끝날 때쯤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저 눈병 맞대요.
선생님은 ‘왜 조심을 안했냐, 수건을 꼭 따로 써야 한다, 손은 깨끗이 씻어야 한다’라는 왠지 민준을 나무라는 말투로 민준에게 당부했다. 민준은 가방을 걸치며 문수에게,
-오늘 PC방은 같이 못가겠다. 미안.
-아냐. 당연히 눈병부터 나아야지. 푹 쉬어.
문수는 기대했던 PC방을 민준과 못 간다는 사실이 내심 아쉬웠지만, 단짝 친구 민준을 걱정하는 마음에 교실 밖으로 마중 나왔다. 그때, 병현이 다가왔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며 민준을 가로채 갔다. 순간, 뒤로 밀쳐진 문수는 병현의 행동이 수상했다. 한참을 따라가 보니 둘은 소각장에서 멈췄다. 문수는 그곳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분명히 민준이 눈병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들었을 병현이 민준의 눈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문수가 놀라,
-안병현! 지금 뭐 하는거야?
-야! 안 꺼져!?
#5
6교시가 반쯤 지날 때쯤, 병현이 조용히 손을 들고 일어섰다.
-선생님. 저도 눈병인 거 같아요!
-너도 그러니? 얼른 양호실 가봐라!
어쩐지, 더 커진 선생님의 목소리. 그리고 민준보다 더 빨개진 병현의 눈. 그런데 더 이상한 점은 병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지고 있는 것이었다. 문수는 병현이 마치 스타크래프트 저그에 속해있는 어떤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조금 전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병현이 의도적으로 민준에게 눈병을 옮은 것이었다!
수업 종이울리자, 병현이 돌아왔고,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는 친구들에게 병현은 당당하게, 여유롭게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혹시 말이야, 눈병 걸리고 싶은 사람은 나한테 말해. 내가 500원에 옮겨 줄게. 이거 일주일 동안 학교 안 나올 수 있거든!
-뭐? 정말이야?
갑자기 교실이 술렁였다. 반 친구들은 반원을 그리며 병현을 둘러쌌다. 그리고 하나, 둘 손을 드는 친구가 있었다. 문수는 잠시 생각했다.
‘500이면 PC방 두 시간인데..’
#6
다음날, 한 반에 열한 명이 결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학교는 비상에 걸렸다. 병현의 ‘눈병 매매’가 아이들의 입을 통해 담임 선생님의 귀에 들어간 것이었다. 결석자 명단에는 문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7
일주일 후, 9시 뉴스에 문수의 학교가 나왔다. 모자이크로 가려진, 복도 앞에 네 줄로 엎드린 약 40명의 학생 장면을 지나, 곧 병현이 등장했다. 모자이크 속 안대를 한 병현의 의기소침한 목소리.
-친구의 눈을 이렇게 손으로 만져서 옮았어요.
선생님은 ‘단체 기합’이라는 편한 길을 택했다. 눈병에 걸린 모든 아이에게 공평하게 엎드려 벌을 받게 하고, 한 명씩 ‘풀 스윙’ 두 대씩 맞는 것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누가 누구에게 옮았고 옮겼는지, 의도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문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병현을 깊이 원망했다. 병현에게 결코 ‘눈병 매매’를 하지 않았음에도, 눈병에 걸려 이 사건에 연루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병현의 눈을 직접 손으로 만져 옮은 친구도 있었고, 그냥 자연히 옮은 아이도 몇몇 있었는데, 문수는 후자였다.
눈병에 걸려 좋은 점 따윈 없었다. 눈병에 걸려 온 문수를 엄마는 곧바로 격리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그토록 가고 싶은 PC방은 일주일의 지독한 가려움을 이겨내야만 갈 수 있었다. 문수는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일주일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란 병현에 대한 저주뿐이었다. 문수는 거울 속, 병현처럼 변한 자신의 ‘레드 아이’를 주먹으로 깨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