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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록 Oct 24. 2024

오락실 뒤 작은 공간




월요일이 싫다는 아이들의 말에 문수는 동의하지 않았다. 월, 수요일은 컴퓨터 학원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학원에 가는 것 자체가 좋기도 했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집과 컴퓨터학원 사이, 작은 오락실이 있었다. 학원이 끝나는 저녁 7시면, 엄마가 집에 도착하는 9시까지 약 두 시간이 남는다. 문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오락실에서 보낼 수 있었다.

문수는 부모님을 설득시켜, 계속해서 컴퓨터 학원에 다닐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다. 지난달, 워드 3급을 단 한 번에 딴 것이었다. 다음 2급, 1급을 따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릴 것이기에, 문수는 부모님께 기특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오락실을 다닐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철권 3’는 문수가 오락실에서 즐기는 단 하나의 게임이었다. 캐릭터를 선택해 상대와 3판 2승제를 겨루는 대전 액션 게임인데, 문수는 이 동네에서만큼은 자신을 당해낼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하루 용돈 2,000원으로 두 시간을 버티는 건 문수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이었다. 내부 공사를 한다는 컴퓨터 학원의 공지가 있었는데, 문수는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오락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여섯 시에 오락실에 도착한 문수는 여느 때처럼 철권 게임기 앞으로 갔다. 그런데 두 세살 어려 보이는 왜소한 아이가 먼저 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문수는 그 아이와 대결하려고 반대편에서 동전을 넣었다. (양옆, 혹은 앞뒤로 게임기가 이어져 있다) 상대가 게임을 하는 중에 동전을 넣으면 맞대결이 펼쳐지기에, 아이는 고개를 슬쩍 들어 반대편 문수를 보았다. 문수는 못 본 척하며 게임을 시작했다. 태권도 기술을 쓰는 ‘화랑’을 선택한 문수와 주먹이 주 무기인 ‘폴 피닉스’를 선택한 왜소한 아이. 둘의 대결이 펼쳐졌다.

왜소한 아이는 문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문수는 화랑의 발기술로 어렵지 않게 상대의 캐릭터를 K.O. 시켰다. 분했는지, 아이는 동전을 다시 넣었다. 재대결의 결과 역시 문수의 승리였다. 동전을 몇 번 씩이나 다시 넣어, 캐릭터를 바꿔가며 문수에게 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문수는 오락보다 아이의 흥분한 모습이 더 재미있어졌다. 아이가 아슬아슬하게 이긴 것처럼 한 판을 져주었다. 기뻐하는 것이 게임기 너머로 느껴진 문수는 다시 동전을 넣고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그 아이가 진 것처럼 이겼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아이는 다시 동전을 넣었다. 결과는 역시 문수 승.

점점 흥미를 잃어 가는 문수와 달리 아이는 부서져라, 버튼을 눌러댔다. 약 한 시간 동안, 문수는 단돈 400원으로 왜소한 아이를 농락했다. 어느새 더는 도전을 하지 않기에, 문수는 아이가 동전을 모두 탕진했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툭툭’


누군가 문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사람은 교복을 입은, 한 사람은 노란 머리카락의 키 큰 남자였다.

-따라나와 XX야!

변성기 지난 걸걸한 목소리에 문수는 순간 놀라,

-왜요?

라고 물었고 그 둘은

-왜요?? 뒤지고 싶냐? 얼른 나오라고 X끼야!

라며 문수의 귀에 속삭였다. 어리둥절해하는 문수가 일어나자, ‘노랑머리’는 한 손으로 문수의 멱살을 잡고 오락실 뒷문으로 끌고 나갔다. 그리고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눈에 띄지 않는 기가 막힌 골목으로 문수를 몰아넣었다. 문수를 벽에 밀치며 노랑머리는

-니가 아까부터 찬우한테 얍삽이 쓰던 그 X끼냐?

-얍삽이요??

그 왜소한 아이의 이름이 찬우였다는 사실을 문수는 그때 알았다. 억울했다. 자신이 봐주었으면 봐주었지, 얍삽이로 이긴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복’이 말했다.

-생긴 것도 X나 얍삽하게 생겨가지고, 얍삽하게 내 동생 이기니까 좋냐? X끼야?

‘도대체 어떻게 생겨야 얍삽하게 생긴 거지?’ 라는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겁이 난 문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노랑머리는 문수의 멱살을 잡고 벽에 ‘쿵, 쿵’ 밀치며 말을 이어갔다.

-이 X끼가.. 말 씹냐? 너 몇 살이야?

-6학년이요.

-뭐? 6학년? 이 X끼, 찬우랑 동갑인데?

겁에 질린 와중에, 그 왜소한 찬우가 자신과 동갑이라는 사실에 문수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노랑머리는

-이 X끼 봐라. 웃어!? 돌았냐?

하며 뺨을 때렸다. 교복도 화가 났는지, 문수의 가슴을 발로 찼다.

-얍새비 쓴 돈 다 뱉어! 이 X야!

문수는 주머니를 뒤져, 남은 돈을 꺼내 그들에게 주었다.

-천 원짜리 한 장에 오백 원이랑 백 원!? 이거밖에 없어? 이 X끼! X나 그지 X끼네?

라며 주먹으로 문수의 가슴을 연신 찔렀다. 잠시 후, 어디선가 찬우가 나타났고, 그들은 낄낄거리며 찬우에게 돈을 주었다. 흡족해하는 표정의 찬우를 보며 문수는 강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 왜소한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두려움에 포기해야만 했다.


한 주가 지나가고, 다시 월요일이 되었다. 공사가 끝난 컴퓨터 학원은 깨끗하고 넓었다. 문수가 학원에 도착하자, 데스크에서 새로 배정된 넓은 반으로 안내했다. 반을 들어가자, 문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곳에 지난주의 ‘교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교복은 따라나오라며 눈으로, 턱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한 채 비상구 계단으로 문수를 끌고 갔다. 그리곤 조용히 속삭이며,

-말하면 죽여버린다. 알았어?

-네.

-그냥 지금 꺼져. 또 거기로 끌고 가기 전에.


그 일 이후로, 문수는 좁은 공간에 들어가지 못했다.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컴퓨터 학원은 싫증이 났다는 핑계로 그만두었고, 오락실도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 골목을 지나야 할 때는 옆길로 돌아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문수는 ‘작은 공간’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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