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우우우우’
하필이면 문수가 반찬 투정을 할 때, 처음 들었던 소리다.
‘쉿!’
윤정은 멀리서부터 조용히 들려오는 오묘한 소리에, 아들 문수를 집중시켰다. 문수는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공포는 더해갔고, 급기야 하얀 연기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윤정은 창문 밖을 보며,
“지금 밖에 망태 할아버지가 널 찾고 있어. 잡혀가고 싶으면 계속 반찬 투정하던지!”
문수는 ‘입으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온 동네 아이들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망태 할아버지’를 상상하며, 그토록 먹기 싫었던 오이지를 와삭, 씹었다. 그날 이후, 가끔 동네에 이 소리가 들려오면 윤정은 마치 잘 된 일이라도 된 듯 문수의 잘못을 들먹였다.
“너 숙제는 다 했어?”
“TV에서 안 떨어질래!?”
“받아쓰기 시험지 가져와!”
그 대단한 망태 할아버지의 존재 역시, ‘산타할아버지의 존재와 다르지 않다’라고 확신을 하게 된 건 문수의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다. 같은 반에 ‘희정’이라는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청소 당번을 함께 하게 되었다. 둘은 분리수거를 맡았지만, 희정 앞에서 무슨 말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는 문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리수거를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답답한 사흘이 지나고,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그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우우우’
집이 아닌 곳에서 이 소리를 들은 문수는 많이 놀랐다. ‘내가 잘못한 게 있나?’라는 생각과 함께 또다시 망태 할아버지가 문수의 머릿속을 지배하려는데, 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희정이었다.
“소독차 따라가자!”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희정은 문수의 손목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방금 씻은 촉촉한 희정의 손이 문수의 손목에 시원한 감촉으로 전해졌다. 망태 할아버지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잠시 주춤했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희정은 문수를 더욱 꽉 잡고 달릴 뿐이었다. 교실, 운동장, 교문을 차례로 빠져나와, 소리가 가까워지는 곳으로 달렸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에 문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희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문수가 지쳐서 헉헉, 대고 있으면 다시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그렇게 몇분을 달렸을까. 하얀 연기가 가까워졌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문수는 무서웠다. 망태 할아버지를 마주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을 때, 희정은 마침내 달리기를 멈추었다. 이번엔 문수가 희정의 손을 꼬옥 잡았다.
연기가 조금 걷히고 나서야 문수는 희정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하얀 치아, 눈웃음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문수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졌다.
둘은 멀어지는 트럭을 보았다. 문수는 하얀 세상이 조금만 더 지속되길 원해서, 희정의 손을 잡고 트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연기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문수는 희정의 손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