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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Sep 14. 2021

"이 배 값이 얼마요?"

엄마가 우리를 키우신 그대로

나는 배를 좋아하지 않는다.


덥고 습한 여름이 그래도 좋은 이유는 볕 뜨거운 계절의 축복이 주는 풍성한 과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과일을 너무 좋아해서 과일채소식 다이어트를 할 때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전혀 무리가 없어서, 다이어트는 실패했다.)


그런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과일이 있다. 바로 감과 배다. 과일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감이나 배를 깎아 내밀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감과 배는 왠지 삼키기만 해도 이 빠진 호호 할머니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일이란 자고로 적절한 신맛이 단맛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감과 배는 오로지 단맛만 있기에 과일같은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 그렇다! 최상의 단맛을 위해서는 신맛, 짠맛이 필요하다.


작고 마른 딸아이는 자주 아팠다. 아비와 어미는 아이에게 사과와 배를 먹였다.


「어쩐 일인지 딸아이는 감기만 걸리면 토하고 잘 먹지를 못했다. 아비는 큰아들이 폐렴으로 병원 신세를 졌을 때 오빠 침대 옆에서 콧물을 계속 훌쩍이던 딸아이 모습이 자꾸 목의 생선 가시처럼 걸린다. 오빠 치료에 밀려 제때 치료받지 못해 감기라는 고약한 놈이 아이의 몸에 쭉 살게 되었다고 믿는 아비는 마음이 안 좋다. 콜록대느라 밥을 잘 삼키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사과 반쪽을 잘라 씨 부분을 도려낸 후 얇은 수저로 박박 긁어내어 그것을 떠 먹인다. 어미는 어미대로 분주하다. 열까지 올라 뒤척이는 딸아이의 감기가 영 떨어지지 않을 때는 누렇게 잘 익은 배의 씨앗과 살을 적당히 파 내어 그 안에 도라지, 대추, 생강, 은행 등을 넣어 꿀과 함께 정성껏 고아 그 물을 마시게 한다.」


지역마다 만든이의 솜씨마다 다른 배숙의 모습과 재료들. 엄마가 만드시는 배숙과 가장 비슷한 사진을 찾았다. 두 장의 사진은 모두 만개의 레시피 '따봉맘미니'님의 레시피에서.


아직도 몸이 아플 때면 무성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떠 오르는 기억이다. 딸래미가 좋아해서, 부모님께서는 부족한 살림살이에도 과일을 잘 챙겨주셨다. 유난히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동네 약국 약사님이 약값을 깎아주셨을 정도로 병원 약국의 단골 손님이 되어버렸었는데, 엄마는 잘 챙겨 먹어야 감기도 낫는다고 참 열심히도 간호를 해 주셨다.


 수저로 곱게 갈아 부드럽게 넘기는 사과, 온 집안을 달큰한 내음으로 채우던 배숙은 지금도 내 마음까지 데워주는 흔치 않은 소울 푸드다.


"이 배 값이 얼마요?"


성인이 되어서도(엄마 아빠를 생각할 때면 차마 어른이 되었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엄마는 종종 외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학생 딸이, 그리고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이 집에 오는 날이면 배숙을 한 그릇 풍성하게 고아 내 놓으셨다. 그제서야 그 안을 가득 채운 사랑의 식재료를 하나 하나 뜯어 본다. 통통 불어 한껏 살이 오른 마른 대추, 쌉쌀한 맛이 입맛까지 돌게 해 주는 도라지, 먼 길 가는 새색시 화장실을 참게 해 주었다는 은행까지 엄마의 이야기와 함께 떠 마시는 배숙은 그야말로 영혼의 음식다웠다.


평소와 같이 대화를 나누던 중 엄마가 기억을 떠올리시며 우리를 키우던 이야기를 꺼내놓으시는데 그 이야기는 참으로 놀라웠다.


"너희 키울 때, 참 그런 일도 다 있었다. 너를 업고 시장엘 갔지 않니. 이리저리 다니면서 호박도 들어 보고 고등어 살도 눌러 보고 시장을 다 봐서 집에 왔는데, 글쎄 니 손에 니 머리만한 배 한 알이 들려 있는 거야. 이게 웬일인가 생각해 보니 내가 과일 전에서 과일을 좀 사볼까 하고 허리를 굽히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그냥 돌아왔는데 아마도 그때 네가 손을 뻗어 그 배를 집어 들었던 모양이야. 배 하나 가격을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너를 내려 놓고 다시 그 과일 가게에 갔다.

- 이 배 값이 얼마요, 우리 애가 내 등에 업혀서 시장 구경을 왔다가 이 배를 집어 들은 모양이오. 아이가 들고 왔으니 물릴 수도 없고, 값을 쳐 드려야겠소.

지금도 네가 그 조그만 손으로 그 큰 배를 어찌 집어 갖고 집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야. 그래도 내 자식 도둑으로 키울 수 없어서 그 배 값을 주고 왔다."


자식을 도둑으로 키울 수가 없어서, 값을 치르지 않은 음식을 자식에게 먹일 수는 없어서 엄마는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다.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당당하게 벌어온 가장의 정직한 돈으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바르고 떳떳하게.


적어도 엄마의 품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정직을 양식 삼아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쩌면 사물을 대할 때 느껴지는 내 안의 수평한 저울, 내면의 양심이라 부를 수 있는 작은 것들, 때론 고지식함으로 불려지는 그것들이 그때부터 굳건히 내 안에 자리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내 아이를 키우다가 부딪히게 되는 갖가지 유혹의 상황 앞에서 나는 그날의 엄마를, 그날의 엄마 마음속 간절한 바람을 떠올린다.


내 아이야, 세상은 너에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때론 손해일 수 있다고 말해도 엄마만큼은 너를 그렇게 키워 세상에 내보내고 싶지 않다.

세상의 속된 이치와 쓰고 비린 맛을 네가 어느 순간 경험하게 되더라도 무엇이 바른 맛이었는지는 먼저 알게 하고 싶다.

"이 배 얼마요?"라고 묻던 내 어머니의 당당함을, 너에게도 보여 주는 그런 어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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