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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Sep 22. 2021

아기체입니다.

서툴게 써 내려간 네 살의 진심

처음 '엄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어쩌면 저렇게 서툴고 조심스레 써 나간 문자로서의 엄마를 목격하는 것은 조금 더 뭉클하다.


아기, 아가라는 말처럼 예쁜 말이 있을까.


고작 두 글자에 겨우 세 개의 음운으로 구성된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안 좋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진짜 젖먹이 말고 나이 어린 딸이나 며느리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시집가지 않은 딸도 '아가 딸'이라 부른다.

공룡이나 상어는 무서운데 아기 공룡 둘리와 아기 상어 올리는 귀엽다.

'아기아기하다'라는 신조어도 있다. 무언가 작고 어리고 '귀염뽀짝'한 것들을 가리키는 형용사 되시겠다.


엄마는 그래서 좌충우돌 눈먼 육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기아기한 것들을 모았다. 그때는 너무 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사라질 아기 사진, 아기 말, 아기 그림..... 할 수만 있다면 아기 냄새까지 모조리 다 모아 두고 싶었다.


아기들의 창작욕구는 어마어마하다. 아기가 손에 크레파스를 쥐고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면 1일 1 스케치북은 아주 평범한 일이 된다. 그 수많은 아기 그림들 속에서 사진첩에는 2013년 4월 23일의 아기 그림이 저장되어 있었다. 작품명은 '사과나무'다.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아기의 첫 아기 그림 작품명 <사과나무>

자기 아기를 볼 때면 시력 3.0이 되고 거짓말쟁이가 된다는 엄마의 시력과 마음으로 자세히 살펴보자.


사과나무는 뿌리, 줄기, 잎, 과일까지 모두 갖춰져 있다. 저 금방이라도 물을 빨아올릴 듯 뻗은 뿌리를 보라!! 게다가 열매는 꼭지까지, 그 뿌리는 신선함이 느껴지는 갈색 흙에 심겨 있다. 디테일이 꽤 섬세하다.


(이상, 여기까지는 아기 키울 때 하루에도 열 번씩 한다는 '엄마 거짓말'이다. 메모가 아니었다면 저게 사과인지 눈 세 개 달린 괴물인지 바다 위를 헤엄치는 말미잘인지 잘 알기 어렵다.)


사실 저 사진을 찍고 8년 만에 다시 사진을 꺼내보는 어미의 입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기억으로 보완하지 못하는 아기 그림 사진이 남아 있다는 다행스러움보다도 흐릿하게 소환되는 2013년 당시 나와 아이의 소통 흔적이다. 8시 출근 6시 퇴근의 고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의 절대적 양은 부족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안에서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집중했었다. 몸은 말할 수 없이 피곤하고 정신은 산란했겠지만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그게 5분이든 50분이든 오롯이 집중하고자 했다. 나에게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되는 한 장의 사진은 그래서 엄마의 자부심이다. 낙서가 아닌 첫 그림다운 그림을 그냥 넘기지 않고 대견해하는 엄마와 사과나무라고 당당히 밝혔을 아이의 뿌듯함이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찾아오는 듯하다.


숫자를 쓸 수 있어요.


누가 봐도 1,2,3

그런가 하면 어느 순간 아이의 스케치북에서 그림이 아닌 숫자 또는 문자로 보이는 것들의 흔적을 접하게 된다. 그럴 때 엄마는 고고학 전문가가 커다란 돋보기안경을 쓰고 모래알 속에서 깨진 유물 조각을 찾듯 진지해진다. 무심하게 그은 작대기는 1이 되고, 구부러진 것은 2가 되며, 돼지 꼬리처럼 말린 곡선은 3이 된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거짓말쟁이가 된다!


그런데 이 그림 속 숫자는 누가 봐도 1,2,3이다. 이런 사진을 찍다니, 아이의 작은 발전에도 박수를 치며 사진을 찍은 고슴도치 엄마가 나였겠다. 이제 5학년이 된 아이는 어제저녁 방정식과 함수를 풀었다. 문제를 풀다가 내게 뭘 물어보는데, 나는 질문조차 이해를 못하겠더라. 세월은 신비롭다.



문자를 쓸 수 있어요.
삐뽀차가 뿜는 매연 뒤에 콜록대는 '엄마'라는 아기체


이 날의 감동은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숱하게 들은 엄마라는 말, 아니 내가 먼저 무수히 불렀을 말, 때론 귀를 막고도 싶었던 그 말, 을 문자로 보던 날의 기억은 위 두 장의 사진보다 비교적 생생하다. 그날도 아이는 각양각색의 낙서와 그림이 뒤죽박죽인 도화지를 천재 화가처럼 열렬히 소모하던 날이었다. 꼭 그 단어를 쓰려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천 번은 그렸을 경찰차 뒤에


'엄마'


라는 단어를 살포시 적은 그날은.


대범한 필체의 아기체였다! ㅇ과 ㅁ을 적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중학생이 성적표에 엄마 사인을 하면 금방 티가 나듯이, 문자에 익숙한 어른도 결코 아기체만의 '아기아기한' 느낌을 흉내 낼 수가 없다.


처음 '엄마'가 되었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을 때보다, 그리고 그렇게 낳은 아이가 입술을 움직여 '엄마'라고 내뱉은 말을 들었을 때보다, 어쩌면 저렇게 서툴고 조심스레 써 나가 문자가 된 '엄마'를 목격하는 것은 조금 더 뭉클하다. 마치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내 엄마예요.


디즈니 만화 영화 <소울>에서는 아기들이 지구로 오기 전 이미 성숙한 사고와 인격을 갖춘 영혼이었다는 영화적 상상이 나온다. 그리고 멘토로부터 교육을 받고 지구 통행증을 받아 부모들에게 도착한다.


아마도 모든 엄마들은, 그런 생각을 한다.



고마워, 아기야! 프랭크, 토토, 로이보다 '엄마'를 먼저 써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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