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 수집가 Oct 05. 2021

아이의 '마음 체력' 길러주기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무심(無心) 육아 두 번째 이야기

마음 체력 길러주기란?

▶ 아이가 엄마와의 밀도 있는 놀이 경험을 바탕으로 엄마 없이도 힘들어하지 않고 놀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점점 늘려주면서 심적 안정감을 길러주는 일


2.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만큼은 같이 해주었어요. 엄마가 아닌 '친구'로서.


나는 아이가 하나다.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도 결코 둘째를 낳겠다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다. 10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던 2010년 1월 5일 새벽, 15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의 심박수가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급히 제왕절개 수술에 돌입했다. 긴 산고의 시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다리가 무섭게 붓고 물에 젖은 솜처럼 온몸이 무거웠으며 날숨은 내쉬어도 들숨이 쉬어지지 않아 이대로 숨이 멈출까 겁이 났다. 그 시기로 절대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이것은 내 모성이나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였다.

그 후로 옆집 윗집 아랫집 아주머니들이 아무리 둘째 소식을 물어도 일말의 흔들림이나 미련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한테 미안해지는 시기가 왔다. 아이가 외동임을 불만스러워한 적은 없었지만 혼자 노는 모습은 애잔했다.


잔디밭에 잔디가 하나도 없는 추운 겨울날에도 축구는 계속된다. 핸드폰 게임은 엄마와 함께.
바닷가 여행에서도 빠지지 않는 야구 글러브

그래서 다짐한 것은 엄마가 아닌 친구 역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당시 육아에서 '친구'라는 부캐에 무척 충실했고 이것은 아이의 성장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아이는 특성상 매우 활발했고 모든 놀이를 같이 하며 맞장구쳐 줄 누군가를 언제나 강력하게 원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자동차 그리기로 재활용에 내보낸 스케치북만 몇 박스가 넘었고 비행기를 접는 방법은 열 가지도 넘게 터득했으며 때로 소파에 웅크려 호출을 기다리는 변신 로봇이 되었다. 레고 블록은 나도 흥이 나서 같이 맞추었고 자동차와 팽이 배틀은 정말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놀이였다. 조금 커서 야구를 하자고 조를 땐 난감했지만 안 하면 몰라도 할 땐 '놀이에 진심'이어야 한다. 스케일은 작을지라도 내용만은 리얼이다. 글러브와 고무공, 두꺼운 종이 배트까지 꺼내 와서 포수, 투수, 타자, 심판 모두 다 진짜로 해야 한다. 안타도 치고 고의 4구로도 내보내고 몸에 맞은 볼도 해 보고 심판이 삼진 아웃도 외치고 무리한 도루로 좌절하는 선수도 되어 본다. 한번 시작하면 열 바퀴는 돌아야 하는 부루마블까지 남자아이 놀이 생활은 모두 고스란히 겪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일하는 엄마였다! 매일 함께 있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퇴근 후 아이와 1시간 정도를 진하게 놀아주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늘 아이와 함께 있어준다가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농도 있게 가슴속 깊이 남도록 놀아주는 것, 그럼 그 기억으로 아이는 다음날 엄마가 야근이나 회식 등으로 늦더라도 조금 참고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음 체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놀이에서 엄마가 아닌 친구라는 부캐로 아이를 대할 때에는 메소드 급 내면 연기가 필요하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친구나 형제와의 놀이에서 생길 수 있는 상황을 가미해 본다. 엉뚱한 우기기도 시전해 보고 특히 경쟁 게임에서 아이라고 봐주는 것이란 없다. 치열한 승부 끝에 이겼을 때 적당한 놀림과 으스대기는 덤이다. 아이는 엄마의 속도 모르고 엄마의 야속한 낯선 모습에 눈물도 쏟는다. 외할머니는 왜 애를 울리냐고 타박하지만 엄마의 심정은 때로 비장하게도 아기 새를 둥지 바깥으로 밀어내는 엄마 새의 발길질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의 성장과 변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아이가 놀이에서 규칙 준수, 참을성, 타인과의 상호작용 등에서 얼마나 민감성을 지니는지 알게 되며 그 변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엄마만이 그 차이를 섬세히 느끼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또한 타인과의 놀이는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때로 반칙과 억울함이 존재하며 그 결과를 수용하는 것까지임을 알게 된다. 눈물도 쏟았지만 대부분의 놀이는 등장인물들의 파이팅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아이는 엄마의 무심한 관찰과 무관하게 그저 엄마와 놀게 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마치 몸에 좋은 쓰디쓴 약에 달콤한 슈가 파우더를 뿌려 먹이듯이.


김현수 선생님의 <엄마 냄새>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책 내용 중 하루 3시간 아이에게 엄마 냄새를 맡게 해 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 책을 함께 읽은 또래 워킹맘들의 적잖은 오해와 분노를 샀다. 논지에는 공감하지만 허탈감과 죄책감이 들게 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육아 전문가들의 말은 전문성에 목마른 엄마들에게 언제나 외면할 수 없는 묵직함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란 직장 맘에게는 정말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런데 나의 경험으로 그의 조언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아이는 10분을 놀아주면 30분은, 30분을 놀아주면 그 후 1시간 정도는 엄마를 찾지 않고 만족해하며 논다(이 놀아주는 10분, 30분이 얼마나 고된 시간인지, 반면 그 후 30분, 1시간이 얼마나 꿀 같은 시간인지!). 그래서 앞선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잔상이 오래 남는 엄마의 격렬한 리액션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가 엄마를 부를 때 가서 뭔가를 잠시 해 주거나 해 주는 척하고 다시 내 위치로 오면, 흡족하지 않은 아이는 어차피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족감을 어느 정도 느낄 때까지 충분히 놀아주면 그 후로 차라리 엄마가 엄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면서 좀 더 편해진다. 그것이 내 경험이다.


물론 일주일 중 하루 한 시간이라는 제안도 고달픈 엄마들에겐 만만치 않은 수치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 희망적인 것은 아이가 커 갈수록 그렇게 버텨주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는 것. 서너 살 때에는 30분의 놀이가 1시간의 엄마 시간을 주었다면,  대여섯 살이 되면 엄마가 함께 해 주는 놀이 시간이 좀 더 짧아져도 그 힘을 바탕 체력 삼아 아이는 혼자서도 즐겁게 놀이든 공부든 하게 되더라는 것. 아이의 마음 체력 길러주기는 그래서 꽤 쓸 만한 엄마의 전략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전 01화 "오다 주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