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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Sep 30. 2021

"오다 주웠다"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무심(無心) 육아 첫 번째 이야기

찐 깐 밤만큼 소박하면서 손이 많이 가는 간식이 또 있을까요?                      


아침에 집에 오신 엄마가 바스락거리는 작은 봉지를 불쑥 내미신다.


"니네 아빠가 앞산에서 떨어지는 알밤을 새벽마다 나가서 줍더라. 다른 사람 줍기 전에 줍는다고. 그게 한 바구니가 되어서 몇 개 쪘다."


그 말씀이 꼭 '오다 주웠다'처럼 들려 웃음이 났다. 식구 많은 다람쥐 가족의 듬직한 가장처럼 아침마다 툭툭 떨어지는 밤을 모아 한 바구니를 만든 아빠와, 그 밤을 폭폭 삶아 딸래미 주려고 한 시간은 앉아 껍질을 벗겼을 엄마. 내 눈썹이 올라가고 반가움이 듬뿍 묻은 손이 먼저 마중을 나간다. 아빠의 부지런한 발품과 엄마의 정성어린 손길로 건네 주신 찐 깐 밤. 웃지 않을 수 있는가.

                                

엄마는 말하지 않으셨지만 저 말들 사이엔 '니가 밤을 그렇게 좋아하잖니.'라는 얘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진짜 중요한 그 말은 쏙 빼고 모를 리도 없는 앞뒤 사연만 멋쩍게 건네신다. 무심한 비닐봉지에 싸인 맛있는 알밤처럼 말이다. 전 같으면 '아니 왜 이런 걸 힘들게' 하며 타박이 나갔을 거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그게 엄마 아빠의 진심인 것을 알고 그분들의 무심한 진심이야말로 나를 이제껏 키워온 세월의 팔할이기 때문이다.




무심하게 자란 엄마는 무심하게 아이를 키웁니다.


나는 무심하게 키워졌다. 그 시절 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게 컸겠지만 삼남매에 시모를 봉양해야 했던 부모님에게 양육이 처음인 큰아들과 손이 많이 가는 작은아들 사이에서 어려서부터 제 할 일 똑부러지게 해내는 딸은 손이 갈 일이 없었다고 했다. 어릴 적 기억에도 학교 다녀오면 작은 밥상에서 숙제 먼저 하고 가방까지 살뜰하게 싸 놓은 후에야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나갔던 내 모습이 있다. 여자 아이 특유의 야무짐도 있었겠지만 기억이 남아 있는 시절부터 부모님의 손을 무척 필요로 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한번도 호들갑스럽거나 요란하게 우리를 키운 적이 없었기에 어려서 부모님과의 기억은 항상 담백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아이도 그렇게 쿨하게 키우고 있다. 좋게 말해 쿨이지 때로 너무 엄마로서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내심 불안한 적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그 기조는 지금까지도 변화가 없다. 그리고 그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나와 아이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관계에 놓여 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이도 자식이 처음인데 이 정도면 선방이다. 이제 사춘기를 앞두고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다. 내가 본 우리 관계가 제대로가 맞는지, 육아에 정답이 없다지만 부모와 자식의 만족감이 그 척도가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엄마의 한정적 에너지를 꼭 필요한 곳에만 집중해서 쓰는 육아, 나는 나의 육아를 그렇게 말하고 싶다.

                                            

1. 먼저, 아이의 말에 집중했습니다.


활동적인 남자 아이를 키우면서 들은 아이의 말 중 가장 무서웠던 말이 있었다. 그 말은 지금도 귓가에 너무 생생해서 환청이 들린다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을 정도다. 그 말은 바로,  


엄마 이것 좀 봐 봐, 엄마 나 좀 봐 봐.

였다. 한 시간에도 수십 번은 들리던 그 말은 지금은 그 횟수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조금은 무섭다. 퇴근하고 온 엄마는 무언가 바쁘게 해야 할 것이 많다. 옷도 갈아 입어야 하고, 저녁 준비도 해야 하며, 녀석이 헤집어 놓은 집안 구석구석도 살펴야 한다. 그 바쁜 와중에 부르는 아이의 말에 막상 가 보면 그 보라는 것이 엄마 입장에선 너무 시시한 것들이다!

너 지금 겨우 이걸 보라고 엄마를...이 랩퍼처럼 발사되기 직전되지만 단전까지 그 문장을 간신히 끌어내린다. 그리고 열에 아홉은 가까이 가서 허리를 굽혀 시선을 낮추고 아이가 보라고 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매우 격렬하게 반응한다. 


어머나, 그게 그렇게 움직이는 거였어?
엄마는 처음 보는 거야!


진짜? 우리 아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엄마는 중학생 되어서야 그거 알았는데.


무심한 육아이지만 엄마의 호들갑은 이럴 때 필요하다. 아이가 보여 주는 것들을 부풀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엄마가 보여 주는 최대한의 격렬한 방청객 리액션은 아이를 무척 신나게 한다. 이 '신'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아이가 다시 자기가 놀던 곳으로 돌아가 하던 것을 계속 하게 되는 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를 열렬히 호출하는 아이의 마음에는 신기함, 신남, 뿌듯함 같은 많은 감정이 깔려 있고, 무엇보다 진지함이 있다. 진지함을 무시당하는 일은 생각보다 아프다. 보는 척하는 것은 가짜라는 것을 삼척 동자도 알고 아이도 안다. 나는 그래서 아이의 진심을 향해 가까이 가서 허리를 굽혀 시선을 낮추 것뿐이다. 1분 정도도 되지 않는 엄마의 짧지만 강렬한 반응은 최소 30분은 다시 혼자서도 신이 나서 놀 수 있는 진심의 에너지를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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