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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Oct 13. 2021

실수는 그냥 실수예요.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무심(無心) 육아 세 번째 이야기

3. 아이의 실수에 무심하게 대응해요. 예민한 아이라면 더욱.


이유식 시기에 나는 아이가 음식을 손으로 만지거나 흘리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생각해 보면 생애 최초의 유동식이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사물 탐구의 대상이었을까 아쉽기도 하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이가 쌀 알갱이를 밥상에 뭉개어 옷에 덕지덕지 바르는 것을 두고 볼 자신이 없다. 그 때문인지 아이는 손에 무언가가 묻거나 끈적거리는 것을 1초도 못 견디고 식당에 가면 의자의 청결 상태부터 먼저 체크하며 아무리 소문난 맛집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엔 가지 않는 깐깐 초딩으로 크고 있다. 타고난 기질에 엄마 탓도 조금 있겠거니 싶지만 그게 너와 나이므로 후회하지는 않았고 다만 이후 아이가 하는 실수나 잘못을 무심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유치원에서 바지에다 용변 실수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저귀도 일찍 수월하게 뗀 아이였고 이제껏 없던 일이라 엄마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날은 6세 반에서 7세 반으로 올라간 첫날이었는데, 아마도 다소 낯설고 복잡한 하루 속에서 화장실 타임을 못 맞춘 듯했다. 친구들 앞에서 실수를 했으니 알 것 아는 형님 반 아이가 얼마나 자존심 상했을까. 아이의 마음이 먼저 보였다.


아침에 입혀 보낸 멀쩡한 옷 대신 유치원에 비치된 비상용 의상을 어색하게 입고 하원한 아이는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그런 일을 겪은 아이가 안쓰럽고 혹시나 배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까 봐 난데없는 자기 고백을 했다.


근데 엄마도 일곱 살 때까지 이불에 실수했어.


다른 말은 없었다. 아이는 완벽한 엄마도 유치원 때까지 용변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는 듯했다. 그리고 바지에 실수를 했다는 불쾌한 자괴감에서 가볍게 벗어났고 그 뒤로 그 얘기는 유쾌한 추억거리로 점점 잊혀졌다.




아이의 실수는 계속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비슷한 일은 한 번 더 있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와 만나 마트에 가기로 했는데 큰 볼일을 밖에서 본 적이 없는 아이가 학교에서 드디어 대변을 보았다는 얘기를 꺼냈고, 놀라워하는 엄마에게 뜨뜬 미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그런데 휴지가 없더라."


아이의 첫 자발적 외부 배변(?)이라는 훈훈한 성장 스토리를 예상했건만 이거 생각과 다르게 주제가 시트콤을 향한다. 그래서 이 엄마는 침 한 번을 꾹 삼키고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 그럼 지금 똥을 싸고 그냥 팬티를 올렸다는 말이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고 '잘했다' 고 말해 주었다. 엄마 눈치를 살피며 이 낯선 경험을 어떤 일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며 심각했던 아이의 표정이 미소로 바뀌면서 '그치 엄마? 응가 못해서 죽는 것보단 낫잖아.'하고 당당해진다.




배변 문제 같은 원초적 실수도 있지만 아이가 커 나갈수록 '잘못'으로 분류하고 훈계하고 싶은 많은 실수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초등학교 1학년의 어느 날,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그날따라 아이가 좀 늦는다 생각하며 정문에서 현관문까지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현관 입구에서 다부진 자세로 누군가를 째려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반에서 덩치도 가장 크면서 이상한 방식(친구 신발 밟기, 출입문 막고 서 있기 등)으로 친구를 귀찮게 한다며 종종 불편을 호소하던 학급 친구와 중앙 현관문에서 막 싸움이 붙고 있던 것이다. 그때 내 귀에 들린 말은 생전 처음 아이 입에서 발화된 이었다.


싸움은 둘째치고 겨우 초등학교 1학년밖에 되지 않은 내 아들의 욕하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일단 일촉즉발의 두 아이를 떼어 놓았다. 대체 무슨 일이냐, 그 욕은 언제 어디서 배운 건데, 싸움을 건다고 맞서 싸우면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은 많고 심정도 복잡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남은 감정으로 씩씩거리며 기분이 바닥인 아이를 일단 두고 보았다. 그리고 저녁밥을 차려 주고 조금 놀아 주다가 씻기며 슬그머니 그 얘기를 꺼내 보았다. 여기서의 핵심은 한 템포 늦게, 아이가 어느 정도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샤워라는 기분 좋은 물놀이 시간에 그 일을 회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때의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차분하게 아까의 사태를 떠올린다. 그런 순간에는 그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안다. 더 이상의 잔소리가 필요가 없었다. 관심이되 무심한 관심인 거다.


이처럼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실수가 아닌 성장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실수에 대해 엄마가 취하는 무심한 관심 앞에서 아이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더 잘해 보려는 용기를 얻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네 번째, 마지막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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