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기 1편: 낯선 곳에서의 시작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운이 좋게도 나름 대기업이라 불리는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공채라는 채용시스템이 여전히 일반적이었던 2012년이었고, 나는 15명쯤 되는 입사동기들과 합숙교육을 받고 팀으로 배치를 받았다. 첫 직장의 의미는 컸지만, 나에게 첫 직장은 사실 나를 키워주신 엄마에 대한 효도의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누구나 아는 이름 있는 곳에 들어가서 "우리 아들 어디 들어갔어요"를 해드리고 싶었던 욕심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직장 생활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적응하기에 바빴고, 술을 잘 못하는 나에게 빈번한 회식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동기, 선배 그리고 사수, 팀 사람들과의 즐거움도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의문은 지워지질 않았다. '지금이 내가 원하는 길이 맞을까? 내가 주도하지 못하고 환경에 의해 정신없이 바쁜 삶이' 이대로 회사에 더 있다 보면 나는 점점 더 익숙해지고, 결국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1년 반을 다니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즉시 독일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정해진 게 없는 발걸음이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떠나기 전 DAAD(https://www.daad.de/en/)를 통해 관심 있는 프로그램을 몇 개 찾아두기도 했다. 독일에 전혀 지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수소문해 보니 고향 선배가 독일의 서쪽에 있었고, 선배의 도움을 받고자 자연스레 뒤셀도르프로 입국을 했다. 9월의 어느 날, 뒤셀도르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공항에 마중 나온 선배와 함께 택시를 타고 뒤셀도르프 시내에 미리 예약해 둔 호텔로 갔다. 늦은 밤이었기에 선배는 미리 사둔 맥주 한 병과 칩스를 건네주었다. 고마움을 전하고 호텔 침대 위에 누우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집을 떠나 먼 곳으로 왔구나. 지금의 아내와 나는 허기짐을 칩스로 달래고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인 생존 모드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선배의 인맥으로 바로 입주 가능한 뒤셀도르프 시내의 집을 보기도 했고, 베를린리포트라는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집을 보기도 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집은 뒤셀도르프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에센이라는 도시에 있었는데, 따뜻해 보이는 집 모습과 적당한 가격에 우선 가보자라고 생각했고, 마음에 들었던 우리는 바로 계약을 했다. 그렇게 에센에서의 독일 생활이 시작되었다. 거주지 등록을 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고 휴대폰 심카드도 만들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한국 생활과 달리, 독일에서의 삶은 확실히 여유로웠다. 물론 내가 백수였기에 시간적으로 더 여유로웠을 수도 있지만, 심리적으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독일의 9월은 어둡고 차가웠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새로운 환경은 여러 자극을 주었다. 동네의 슈퍼마켓부터, 에센 시내의 쇼핑몰, 맛있었던 피자가게, 자주 갔던 이케아. 뒤셀도르프, 쾰른 등 근교 대도시로의 마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찾아두었던 석사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다. 내가 관심 가졌던 코스들은 영어로 된 인터내셔널코스였고, 합격을 위해서는 토플성적이 필요했다. 번잡함 없이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며, 집중할 수 있었고 독일에서 치른 토플 시험 점수는 간신히 커트라인을 넘었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여러 서류와 토플 성적을 더해 관심 있었던 대학교 세 곳의 여름학기(독일은 봄에 시작하는 여름학기와 가을에 시작하는 겨울학기 크게 둘로 나뉜다)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한 곳에서 어드미션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에 온 지 반년만에 대학원 입학이라는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 인터내셔널 프로그램이라 영어로 진행되기에 빠른 시작이 가능했다. 독일어였다면 독일어에만 1년 넘는 시간을 투자했어야 했지만, 내가 가진 돈도 시간도 사실 많지 않다고 느꼈기에 빠르게 도전하고 도전에 실패하면 1년의 여행이었다 생각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생각이었다. 다행히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었고, 그렇게 독일에서의 석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2편: 드디어 시작된 독일 대학원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