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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내 머릿 속의 지우개

  

    

작년 10월, 아름다운 계절 가을의 시작과 함께 깜짝 등장한 어르신 한 분이 첫날부터 요양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유난히 귀엽고 작은 얼굴, 키는 크지 않지만 나이에 비해 단단한 체구, 얼핏 보면 대단한 동안인 데다가 웃는 모습이 마치 개구쟁이 소년 같았던 이말숙(가명)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아니 이렇게 젊고 멀쩡한 분이 요양원에 왜?’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야말로 잠깐의 착각이었다. 

그녀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커다란 지우개로 모든 기억과 의식을 지워버린 알츠하이머 중증 치매 환자였다. 그녀의 의식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그야말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수한 백지상태였다.


그녀는 늘 밝은 표정으로,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건들거리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와 두 마디 이상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두 눈을 똑바로 주시하고 건네는 평범한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해 언제나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좌변기에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때로는 밥을 숟가락을 이용해 떠먹어야 하는 것도, 음식을 스스로 씹어야 하는 것도, 양치질하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거부하기 일쑤였다. 물론 기저귀를 차지는 않았지만 대소변도 제때 가리지 못했고, 바지가 젖어도 인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늘 엉뚱한 장소에 앉아 볼일을 보려고 해서 우리를 바짝 긴장시켰다.


고집스럽게 앉아있는 그녀를 달래고 얼러서 화장실에 데리고 가고, 옷을 벗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그녀를 얌전히 앉혀서 소변을 보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목욕이라도 하는 날엔 힘이 장사인 그녀가 팔다리를 사정없이 휘두르고 소리를 지르며 부여잡는 통에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육탄전을 벌여야 했다. 

경력 10년이 훨씬 넘은 베테랑 요양보호사들도 팔다리에 멍이 잔뜩 들어서 ‘백약이 무효’라며 혀를 내두르고 매번 쩔쩔매는 탓에 경험이 적은 나로서는 아예 엄두가 나지 않아 비겁하지만 그녀를 슬슬 피해 다녔다. 


요양원에 있기에 너무 젊은 나이라 할 수 있는 그녀에게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치매라는 괴물이 한 인간의 사고 작용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가족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으며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속앓이를 해야 했을까.

그녀가 요양원에 입소한 뒤로 요양보호사들은 잠시라도 눈을 뗐다간 그녀가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어 늘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녀는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아이들처럼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쳤다. 다른 어르신들의 방을 서성이거나 물건을 만지고 알 수 없는 참견을 해댔다. 늘 부족한 일손이라 우리 요양원에서 한 사람을 전담할만한 인력은 없었으므로 어느새 그녀는 모두의 짐이 되고 있었다. 


어느 날은 그녀가 무언가를 맛있게 소리 내며 깨물어 먹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사탕 같은 것을 준 기억이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 안을 살폈더니 거실에 놓인 화분에 있던 작은 돌들이 잔뜩 나와서 일순간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그래도 재빨리 뱉게 하고 또 치아가 튼튼했는지 상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녀에게 지쳐가던 우리가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주말이 되어 남편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는 날이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남편 역시 그녀의 기억에서 사라지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그나마 아직까지 그를 알아보는 것이 신기했다. 단둘이 살다가 그녀를 요양원에 보내고 나니 너무 외롭다던 그녀의 남편은 일 때문에 더 이상 그녀를 보살필 수는 없다고 했지만 주말이 되면 다행스럽게도 그녀를 꼬박꼬박 데리고 갔다. 


그런데 우리를 극도의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지 두 달 만에 그녀는 놀랍게도 갑작스럽게 퇴소를 결정했다. 그녀의 몸에 안 보이던 멍 자국들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의 남편은 우리 요양원에서의 ‘학대’를 의심했다. 몸부림치는 그녀에게 수시로 맞고 사는 건 오히려 우리 요양보호사들이었는데 학대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주말에 집에 다녀온 그녀의 몸에는 그동안 보지 못한 커다랗고 진한 멍이 실제로 여러 군데 들어 있었다. 어르신들의 몸은 요양보호사들이 수시로 살펴보기 때문에 그 정도의 멍이라면 평소에 모를 리가 없었다. 따라서 정황상 그녀의 남편이 더 의심스러웠지만 관리자에게 대처하도록 맡길 수밖에 없었다.


‘요양원에서의 노인 학대’라는 이슈가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물론 수많은 사설 요양원 중에는 직원들의 인성 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요양원에서 학대라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방 곳곳을 물 샐 틈 없이 CCTV가 지켜보고 있고, 노인 인권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으며, 항상 선임 요양보호사들에게 주의 깊게 듣는 말들이 ‘절대 말로라도 학대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일 만큼 철저하게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증 치매 어르신들의 행태를 잘 알고 있는 처지라서 그런 뉴스를 보면 ‘저런 일부 요양원 때문에 잘하고 있는 곳이 같이 욕을 먹는다’고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론 ‘오죽했으면...’하고 나도 모르게 잠시 혀를 찰 때가 있는 게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치매 어르신들과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겨운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요양원을 나갔던 그녀는 일주일 후에 뜬금없이 다시 왔고, 여전히 속을 썩이며 지내다가 보름 뒤 다시 퇴소한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시달린 탓에 아무도 그녀의 퇴장을 아쉬워하지 않았지만, 또다시 어딘가에서 반가워하지 않을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그녀의 처지와 보호자를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과연 그녀가 미래에 마주하게 될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 부모와 내 형제는 결코 그렇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요양원에서 수많은 치매 환자들을 겪어 봤지만, 그녀 같은 어르신을 감당하기에 얼마나 많은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지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한없이 안타깝고 애처롭지만, 지금 이 순간 솔직히 내 가족이 아닌 것에 그저 잠시나마 감사를 드리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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