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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나에게 휴지를 달라

  

“여보세요~~오” “여보세요~~오” 

오늘도 변함없이 ‘여보세요’를 외치는 801호실의 터줏대감, 별명이 ‘휴지 헌터’인 이연자(가명) 어르신의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린다.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헐레벌떡 다가가 

“왜요, 왜요, 무슨 일이세요, 어르신?”  

“지금 몇 시여?” 

“밥 언제 먹어?” 

“나, 휴지 좀 줘. 휴지” 

“나 기저귀 한 개만 좀 주어” 

라는 짧은 문장 몇 마디가 늘 그녀가 하는 말의 거의 전부다.


그녀는 하루 종일 늘 같은 질문과 행동을 반복한다. 워커를 이용해 느릿느릿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이동 변기에 앉아 한두 시간마다 큰일을 보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갑자기 옷을 격식 있게 차려입고는 워커를 끌고 천천히 거실로 나와 밥을 먹는다. 

키가 크고 우람한 체격 때문인지 마치 고전에 나오는 장수 같은 포스를 지닌 그녀는 평소에는 말이 거의 없다. 머슴을 부리며 살던 지체 높은 양반집의 옛날 마나님 같은 어투로 느긋하게 명령을 내릴 뿐이다. 다만 귀가 어두워서 항상 귀 옆에 바짝 입을 대고 큰 소리로 몇 번이나 말을 해야 겨우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하루에 겨우 몇 마디 하는 돌부처 같은 그녀를 못내 애타게 하고 심지어 평상심마저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휴지다. 그녀는 휴지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휴지가 떨어질 때쯤이면 평소 그렇게 느긋하던 그녀가 안절부절못하고 애걸복걸 휴지를 달라며 줄 때까지 보챈다. 심지어 다른 어르신의 사물함을 뒤져서 휴지를 슬쩍 집어 오는 날도 있다. 그깟 휴지쯤 원하는 대로 주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녀가 날마다 두루마리 휴지 한두 통 이상을 쓴다는 데 있다.

그녀는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치질이 너무 심하고 괄약근에 힘이 없어서 배변이 쉽지 않다. 그래서 늘 변비약을 먹어야 하고 쉴 새 없이 설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행여 똥이 샐까 봐 커다란 팬티 안에 우리들에게 얻은 기저귀를 한 장 넣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두툼하게 휴지를 깔고 또 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령임에도 아직까지는 당신 스스로 그 모든 뒤처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양원에서는 그녀의 휴지 씀씀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큰아들이 일주일에 한 번 면회 올 때 그녀가 좋아하는 떡이랑 휴지를 사서 가지고 온다. 물론 그녀에게는 그것도 늘 부족해서 침대 옆에 층층이 쌓아 올린 휴지들은 일주일을 못 버티고 금세 없어지기 일쑤다. 그러면 그녀는 한두 개의 휴지를 침대 밑에 몰래 감춰두고서도 불안함에 허둥대며 어느새 거실로 나와 

“나, 휴지 좀 꿔 줘, 아들 오면 갚으라고 할게. 한 번만 꿔 줘~ 잉” 

하고 줄 때까지 마구 보챈다. 물론 지금껏 그렇게 사정해서 빌려 간 적지 않은 양의 휴지를 한 번도 돌려받은 적은 없다.


한밤중에도 깊은 잠을 못 자고 거의 한두 시간마다 꼭 깨서 변기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녀를 볼 때면 애잔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선잠을 자다가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하고, 행여 샐까 봐 언제나 노심초사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또 힘이 들겠는가. 자식들이야 어머니가 왜 그렇게 휴지를 많이 쓰는지 다는 이해하지 못해도 원하는 것을 사다 주면 그만이겠지만, 그 휴지에 목매는 어머니의 고통을 반이나마 알고 있을까.

“오늘이 무슨 요일이여?” 

유독 그녀가 좋아하는 찹쌀떡과 휴지를 한 무더기 가지고 오는 아들을 늘 기다리며 습관처럼 우리에게 하는 질문이다. 사실 당신을 찾아오는 아들이 반가운 건지, 떡과 휴지가 더 반가운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아들을 반기는 어머니와 쇼핑백을 한 보따리 들고 들어서는 아들, 떡을 먹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머리를 맞대고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얼굴이 판박이인 두 모자의 모습은 볼 때마다 마냥 정겹다. 


요양원에서 그녀의 아들처럼 매주 정기적으로 어머니를 보러 오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몇 달이 지나도록 심지어 1년 가까이 보호자가 누군지 얼굴 한 번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른 어르신들을 배려해 보호자들을 접견실에서 따로 만나도록 할 때도 있지만, 그리워하던 자식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환해진 같은 방 친구의 얼굴을 눈치 못 챌 어르신들은 거의 없다. 남겨진 그들의 부러워하는 눈을 보고 있으면 얼른 화제를 돌리거나 딴 데 관심이 가도록 유도할 뿐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게 씁쓸할 때가 많다. 


평소 치매가 심한 어르신조차 짧은 순간 가족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밝게 웃는 것을 보면 ‘백약이 무효’라 해도 가족만은 약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옛날 하얀 버선을 얌전히 신고, 조끼와 스카프로 멋을 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천천히 워커에 의지해 품위 있게 걸어 나오는 그녀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어제 아들이 두고 간 휴지가 아직까지 잔뜩 남아있나 보다. 

며칠 지나면 그녀는 또 ‘휴지 헌터’ 답게 

“휴지 좀 줘~어, 휴지. 하나만 꿔 줘어~ 아들 오면 갚을게”

라고 콧소리를 내며 막무가내로 보챌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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