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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자유를 찾아 떠난 길

   


며칠 전 돌아가신 어르신이 계시던 805호실의 빈자리가 채워졌다. 9층에서 근무하다가 여자 어르신만 계시는 8층으로 내려와 일하게 된 지 보름 만에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낯선 어르신의 죽음. 그녀는 내가 내려왔을 때 이미 곡기를 끊은 지가 일주일쯤 됐다는데, 없는 기운에도 틈만 나면 침대에서 자꾸 내려오려고 해서 잠시도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낙상의 위험이 농후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묶어둘 수도 없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내 지켜보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비워졌던 그 자리에 김영희(가명) 어르신이 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다리가 아파서 보행은 불가능했지만, 치매가 비교적 경증인지라 인지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작고 가냘픈 몸에 큰 눈망울 그리고 단아한 말투까지, 젊었을 때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것 같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우리를 볼 때마다 '오늘도 수고해요' '너무 고마워요' 등 예의를 갖춘 인사말을 잊지 않았고, 미안해하면서도 기저귀를 차지 않으려고 이동 변기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그저 교양 있고 점잖은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지나치게 고집이 세고, 예민하며, 성격이 까다로워서 그동안 요양원을 몇 번이나 옮겼다고 했다. 


사실 요양보호사들 입장에서는 이런 어르신의 수발들기가 가장 힘들다. 늘 바쁘게 뛰어다녀야 하는 와중에도 어르신이 수시로 부르면서 하나하나 요구하는 것에 매번 친절히 응해야 하고, 벌어지는 상황들을 조리 있게 설명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는 독선과 아집인 줄 알면서도 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뒤 그녀는 이동 변기에 앉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결국 마지못해 기저귀를 찼다. 그러면서 

“늘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요”

라고는 했지만, 낮에는 물론 한밤중에도 한 시간마다 기저귀 갈 것을 요구해서 쉴 틈 없는 우리들을 더욱 지치게 했다. 심지어 소변을 보지 않았는데도 냄새가 진동을 한다며 갈아달라고 떼를 썼다. 게다가 일부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당신한테만 불친절하다면서 불평을 했다. 

‘안 그래도 자존심 센 분이 기저귀를 처음 찼으니 그 암울한 심정이야 오죽이나 할까’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충분히 공감되기도 하고 또 안쓰러워서 

“에이, 예쁜 우리 요양원 선생님들이 그럴 리가 있나요, 어르신.”

이라면서 억지로라도 웃는 얼굴을 하고 응대해드리면 금세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을 풀고 고마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리한 분이라 우리들을 상대로 밀당과 같은 고도의 심리전을 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소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다소 까다롭긴 했지만 여느 어르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대화도 하고 웃으며 생활하던 그녀가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차고 배변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점점 비관하기 시작하더니 설사가 잦아지자 요양원에서 주는 일체의 약을 의심하며 삼키기를 거부했다. 그나마 소량씩 먹던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늘 다니던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고개만 저었다. 

약을 먹지 않자 그녀는 점점 망상이 심해지고, 치매도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굴 속여?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의사도 감히 나를 못 당해. 내가 먹는 약은 내가 정확히 알아, 내 몸은 내가 잘 안다고”

라며 고집을 부렸다. 

딸이 와서 울고불고하며 약을 먹어야 한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여기를 나가면 더 이상은 받아줄 데가 없다고 협박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모녀가 거칠게 싸우는 소리가 하루 걸러 들리고 소란스러워지자 다른 어르신들까지 불평을 쏟아 놓았다.


건강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자식들과의 싸움이 잦아지면서 그녀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자식들에게 그리고 주변 모두에게 이미 커다란 짐이 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너무 싫었던 것인지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것 같이 보였다. 

그녀는 먼저 소량이나마 규칙적으로 먹던 정규 식사를 일절 거부했다. 그러고는 물과 우유만 이따금씩 마셨다. 어떤 말과 행동도 듣거나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다가가 걱정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면 

“그래도 나란 사람 그렇게 금방 죽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아”

라고 하며 눈을 찡긋하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싱겁게 웃곤 했다. 

요양원에서는 본인의 의지로 식사를 거부하는 터라 억지로 먹일 수도 없어서 그저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안 그래도 작은 체구의 그녀는 눈에 띄게 서서히 말라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헛것을 보기 시작했고, 냄새에 몹시도 민감해졌으며, 환청이 들리는지 허공을 휘젓는 등 이상 행동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항상 복도 쪽을 응시하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다. 당신의 말로는 아들들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을 보고 편하게 가고 싶다고,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있을 거라고, 버틸 거라고 했다. 간절하고 애처로운 그녀의 눈빛을 볼 때면 내 가슴에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리고 자꾸만 코끝이 아리고 눈물이 고여서 무던히 시선을 돌려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기다리던 아들들이 왔지만, 그녀는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보름쯤 지나자 눈이 더욱 깊게 파이고, 초점이 흐려졌으며, 단아했던 그녀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겁이 덜컥 났다. 그제야 마지막 인사라도 하듯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던 다른 가족들이 찾아와서 울고불고했다.

그토록 강인해 보였던 그녀가 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한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늘어져 있다가도 밤이 되면 편하게 죽고 싶다며 하소연했다. 밤에 미동조차 없을 때는 혹시 하는 마음에 그녀의 코끝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미세한 날숨을 확인해야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언제까지 이대로 바라보기만 하라는 거지? 그냥 이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 거냐고.’

이렇게 될 때까지 가족들은 왜 강제로라도 병원으로 모시지 않고 그저 지켜보고 있는 건지, 가슴 한편에서 울분이 치밀어 왔다. 현장을 지켜봐야 하는 나로서는 사진에서나 보던 기아나 난민같이 바짝 말라버린 그녀의 몸을 하루하루 보는 게 몸서리쳐졌다.


그렇게 위태로운 시간들이 며칠 더 지나고 아침에 출근해 보니 침대에 그녀가 없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알고 보니 지난밤 결국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는 거였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긴 한숨을 뱉었다. 비로소 그녀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더욱 화가 치밀었다. 

불치의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피골이 상접해질 때까지 그렇게 두고만 보아야 했던 것인지. 왜 좀 더 일찍 모시고 가지 않은 것인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어르신이라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자식들이 그토록 많으면서 요양원에서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시간을 홀로 죽음과 싸우며 보내도록 했어야 하는지.

물론 그녀의 가족들도 말 못 할 혹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그들의 입장과 사정이 분명 있었을 테고, 제삼자가 함부로 예단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아무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고 소식이 궁금했던 그녀가 어느 날 불쑥 돌아왔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지 보름 만에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강마른 상태였지만 조금은 편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 환영합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좀 괜찮으세요?”

“으응~ 그럼, 알아보지... 그래, 그동안 잘 있었나?”

팔을 부축하는 내게 눈을 찡긋하면서 여전히 익살스럽게 웃어 보이는 그녀를 보며 

“정말 다행이에요, 어르신. 다시는 못 뵙는 줄 알았다고요. 아무튼 잘 돌아오셨어요”

라는 말을 수없이 귀에 속삭였다.


그녀는 소변 배출을 위한 요도관을 새롭게 끼고, 위쪽 틀니를 하지 않아서 예쁜 얼굴 모양이 조금 일그러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예전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805호실 당신의 자리에 익숙한 듯 안정된 자세로 누워 있으면서 전과 달리 식사를 거부하지 않았고 약도 챙겨 달라고 했다.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잠잘 때도 비교적 조용히 누워서 요양보호사들을 수시로 불러 대는 등의 예전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음, 변하신 건가? 좋은 쪽으로? 그렇다면 다행인데...’

일주일쯤 지나자 그녀는 반찬은 전혀 손대지 않고 미음을 국에 조금 말아먹는 걸로 식사를 대신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설사가 시작되자 그나마 먹던 약을 또다시 거부했다. 

식사를 제대로 하셔야 한다고 말해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날처럼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단호한 모습 그대로였다. 몸에서 열이 나는지 이따금씩 차가운 물수건과 찬물만 요구했다. 이제는 간호과에서도 언제 코에 경관 줄을 끼워야 하는지 그 시기를 의논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겉으로는 평온한 시간이 다시 일주일쯤 지났을까. 명절 연휴를 보내고 출근한 아침, 그녀가 지난밤에 주무시다가 조용히 운명했다는 충격적인 얘길 들었다. 바로 이틀 후에 콧줄을 끼우기로 가족들과 최종 결정을 한 상태였다는데,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그 결정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목숨을 놓아버린 것이다.


스스로 음식을 섭취할 수 없는 환자에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콧줄을 끼운다는 것은 희비의 양면이 존재한다. 생명은 유지할 수 있으나 살아 있되 산 것이 아닌 상태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오전 내내 805호실에 있는 그녀의 빈 침상을 바라보며 실감할 수 없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곱씹었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손짓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마치 차가운 콧등이 불시의 일격을 당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아리고 저리며 눈물이 차올랐다. 

요양원에 있는 동안 유난히 내게 살갑고 다정하게 대해줬던 그녀였다. 

80대 중반의 나이, 고인의 성품을 모르는 누군가는 호상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는 그녀의 죽음 앞에서 삶과 죽음의 뚜렷한 경계가 과연 있기는 한 건가 의심스러웠다. 

‘굳이 왜? 이렇게 빨리? 아직은... 더 계셔도 되잖아요? 조금 더 계셔도 되잖아요... 조금만 더......’

805호실 그녀의 침대는 오늘도 주인 없이 여전히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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