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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기저귀에 똥을 싸라꼬?

     


폐질환을 앓고 있는 천성이(가명) 어르신은 평소에 말이 없고 점잖으며 온순한 편이다. 자가 호흡이 원활하지 않아서 늘 산소통을 끼고 생활하는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탓인지 조금은 예민하고 다소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속은 여리고 듬직한 체격에 비해 의외로 겁도 많아 보였다.


두 달 전, 우리 요양원에 처음 들어올 때 그녀는 거동이 불편해서 기저귀를 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큰일은 꼭 화장실에 가서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대변을 기저귀에 보라꼬? 아이고, 내는 몬한다. 우째 기저귀에다 똥을 싸노?”

“아, 글쎄~ 기저귀에는 안 싼다카이”

찝찝하고, 황당하고, 자존심 상하는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는 수 없이 처음 한 달 동안은 급하다는 그녀를 휠체어에 태워서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엉거주춤 힘들게 서 있기는 했지만 뒤처리도 웬만큼 스스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노환과 치매는 예상과 달리 이유 없이 빨리 진행되기도 한다. 입소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깔끔했던 그녀가 자꾸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면서 화장실에 가야 할 시기를 놓쳤고, 이미 용변을 본 그녀를 깨끗이 씻기고 다시 침대에 모시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힘이 필요했다. 

가뜩이나 일손이 달려 힘들어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 표현을 했다.

“내, 기저귀에 한 번 해 보꾸마. 할 수 없지 뭐... 우짜겠노”

잘 생각하셨다고 위로해 드리기는 했지만, ‘본의 아니게 우리 편의를 위해 그녀에게 은연 중 강요를 한 꼴이 돼 버린 건 아닌가’ 싶어서 일거리 하나 줄었다고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사실 어르신들의 잔존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게 요양보호사의 할 일이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빨리빨리’를 외쳐야 하는 요양원에서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는가?’라는 문제는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들이 풀어야 할 숙제지만, 요양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관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내가 나중에 요양원에 가서 저런 상황이 된다면... 쉽게 허락할까?

“에라이~ 이것들아, 기저귀에 똥 싸는 게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쉬운지 아냐? 너희가 일손이 많이 가니까 그러는 거 아녀? 망할 것들...” 

이라고 호통이라도 치지 않았을까.


인지 능력이 남아 있는 분들이 처음으로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게 되고, 우울해하거나 변비로 고생하기도 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급기야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까지 하는 어르신도 적지 않다. 현실에 순응하고 포기하면서 받아들이게 되는 마지막 순간이 생각만큼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은 아니다.

현재 그녀는 큰 거부감 없이 기저귀에 용변을 잘 보는 편이다. 심지어는 종종 봤는지 안 봤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만큼 감각이 둔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은 쭈뼛거리며 얼굴을 붉히고 

“기저귀 좀 갈아 주라. 마... 지금 대변 본 것 같은데...”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하하, 어르신. 후딱 갈아드릴게요.” 

기저귀를 깨끗이 갈아드리고 일부러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토닥토닥해드리면 그녀는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수줍게 웃으면서 민망해하는 그녀의 표정은 아직도 무언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표시다. 곧 익숙해질 거라고 응원해 주는 우리들에게 비로소 그녀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천성이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일주일 전부터 부쩍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이러다 내 죽는 거 아니가? 아직은 조금만 더 살아야 할긴데... 이렇게 몸이 안 좋은 적이 없었는데... 병원에 좀 가면 안 되겠나? 우리 딸들한테 좀 물어봐 도고”

라고 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갑자기 응급 상황이 왔고, 요양보호사들과 간호팀이 심폐소생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허무하게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이틀째 야간 근무하러 들어오는 날 듣게 되었다. 

야근 첫날이었던 지난밤, 갑자기 그녀의 혈압이 높아지고 체온이 올라서 걱정했지만 그녀는 금세 안정이 되었다. 아침 식사 수발을 들면서, 

“어르신, 너무 걱정 마세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겨울이 다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힘을 내세요”

라며 따뜻한 그녀의 등을 내 손으로 쓸어드렸었다. 

“응, 알았대이... 뭐, 괜찮아지겠제? 암튼 고맙구마”

하며 분명히 대답까지 했던 그녀가 아침에 퇴근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운명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충격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최근 기저귀 실수가 잦아지며 부쩍 상태가 나빠진 것 같다고 해서 온통 신경이 쓰였던 터다. 워낙 예의 바르고 점잖은 분이기도 하지만 부산에서 오래 살았다는 지연이 있어서인지 더 정감이 갔던 그녀였다. 

산소 공급기를 끼고 살아야 했던 탓에 혹시라도 병세가 더 악화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 출근하면 늘 그녀에게 먼저 가서 인사하고 컨디션 확인부터 했던 나로서는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뭐가 그리도 급하셨던 걸까. 분명 응급 상황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밤에 119를 불렀더라면 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이렇게 일말의 예고도 없이 허망하게 가시면 가족들은 어쩌라고...’

슬하에 딸만 여럿을 두었지만 기죽지 않게 잘 키웠다며 몹시도 자랑스러워했던 그녀.

갑작스러웠지만 큰 고통 없이 운명하신 걸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라는 동료 요양보호사의 담담한 위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를 통해 삶과 죽음이 불과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두려웠다.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면서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버릇처럼 남들에게 얘기했었다. 이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그 공포 가득한 존재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처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임종도 못 하고 갑작스럽게 엄마를 영원히 잃게 된 네 딸들의 황망한 고통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간 803호실 구석진 그녀의 자리는 야속하게도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마음이 따뜻했던 한 사람의 흔적, 그 체온이 아직도 온전히 남아 있을 것 같은 침대에는 덩그러니 새로 간 시트만 깔려 있었고, 그녀의 짝이었던 맞은편 어르신은 

“아유, 옆에 할머니, 어젯밤 아파서 급하게 병원으로 실려 갔어. 막 119도 오고 했어. 병원에 가서 깨어났다던데? 맞지?”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랑은 상관없다는 듯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네, 어르신. 다행히 깨어나셨대요. 근데 병원에 좀 오래 입원하셔야 할 것 같다고 하네요.”

요양원에서는 우울한 선의의 거짓말이 종종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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