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아”
‘짝짝~짝 짝짝~~~~’
요양원 거실을 온통 울리고도 남는 힘찬 박수 소리가 무료함으로 물든 공간을 세차게 흔든다.
“아오, 시끄러워 저 노인네 또 시작이구만, 시작이여”
“염병할... 못 살아 정말, 저 할망구 좀 어떻게 해 봐.”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쉴 새 없이 아리랑을 부르고 손뼉을 쳐대는 강귀자(가명) 어르신 때문에 TV를 시청하던 다른 어르신들이 볼멘소리를 토해낸다.
겨울 설산처럼 온통 하얗게 물든 짧은 커트 머리에, 늘 냉소적인 표정으로 거만한 듯 팔짱을 끼고, 수시로 듣도 보도 못한 쌍욕을 거침없이 내뱉는 그녀는 우리 요양원에서 소문난 ‘무법자’다. 아무도 그녀에게 시끄럽다고 시비를 걸거나 함부로 건들지 못한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내는 그녀가 종일 하는 일은 늘 같은 곡조의 ‘아리랑 타령’ 한 마디 부르기, 아니면 입을 앙다물며 온 힘을 다해 손바닥이 시뻘게지도록 손뼉을 쳐 대는 것이다. 고령이지만 키가 크고 깡마른 그녀의 힘은 놀라울 정도로 세서, 행여 이러한 행동을 말리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한 번 꼬집히기라도 하면 살점이 뜯기거나 짙은 멍 자국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면 그녀의 주특기 중 하나인 걸쭉한 침 세례를 듬뿍 받아야 한다. 그럴 때 그녀는 날렵한 물총새를 연상시킨다.
요양원에 있는 그 누구든 몸이 재빠르지 않으면 불시에 그녀에게 공격을 당하기 일쑤다. 이 때문에 다른 어르신들과 주먹다짐을 할 뻔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지만, 승부는 의외로 싱겁게 끝나고 최종 승자는 언제나 그녀다. 기습을 당한 어르신들에게는 그저 힘없이 대거리를 하든지 아님 울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치매가 심하고 다른 어르신에 비해서 폭력성도 상당한 편이지만,
“우리 엄마가요? 아이고, 절대 그럴 리가 없지요."
라며 인정하려 하지 않는 보호자가 안정제 쓰는 것을 극구 거부하는 탓에 요양보호사들만 애를 먹는다. 언제 불시에 주먹이 날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잠이 올 때면 웬일인지 아기처럼 순해지기도 하고, 말귀를 알아듣고 한두 마디 대화가 가능하거나 드물게는 아주 잠깐 얌전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뚱땡이 굴러온다, 뚱땡이 굴러온다”
‘짝짝~짝 짝짝~~~~’
그녀가 하는 몇 마디 안 되는 말은 상대에 대한 배려나 거름망이 없으므로 항상 직설적이다.
우리 요양원의 또 다른 싸움꾼인 성기선(가명) 어르신이 후덕한 몸으로 워커를 끌고 천천히 복도를 지나 거실로 올 때, 후환이 두려워서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그녀는 거침없이 내뱉는다. 행여 기선 어르신이 들었다면 큰 소란이 날 판이지만 다행히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므로 아직까지 운 좋게 충돌이 없었을 뿐이다
.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마녀를 꼭 닮았다고 해서 ‘마녀 어르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녀의 또 다른 특기는 침상에 있는 이불을 집어던지는 것이다.
잠이 깨면 늘 그녀는 이불이며 베개며 밑에 까는 침대 시트까지 몽땅 빼서 눈 깜빡할 사이에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을 하고서 팔짱을 낀다.(그녀는 낮에는 물론 잠을 잘 때도 거의 팔짱을 끼고 있다) 그럴 때는 종종 기저귀가 젖었다는 의사 표시일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다. 게다가 기저귀까지 풀고 옷을 홀랑 다 벗어서 던져 놓을 때도 있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팔이 아프고 저릴 법한데도 그녀가 팔짱을 계속 끼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손뼉을 그토록 오래도록 세게 자주 치는 이유도 물론 알지 못한다. 찾아온 아들을 알아보기는커녕 얼굴에 정통으로 한 무더기의 침을 뱉고, 정기적으로 방문 진료하는 의사에게조차 욕을 하고 침을 뱉어서 당황하게 만드는 이유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가끔씩은 상황에 맞는 촌철살인의 대답을 해서 혹시 그녀가 치매로 위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잠시 의심해 보기도 하지만, 그녀는 항상 같은 행동을 지치지 않고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살집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데다 온몸 여기저기에 수술 자국이 선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요양원에서 힘이 가장 센 천하장사인 그녀.
모두가 잠든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허공에 손짓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어르신, 왜 안 주무세요?”
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나직이
“우리 아가 왔니? 그래, 우리 아가 왔구나”
라며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해서 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그녀.
무슨 이유인지 기저귀를 갈 때면 항상 심한 냄새가 나서 가까이 다가가기 꺼려지지만, 선임 요양보호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알 수 없는 그녀.
세월의 무게 때문에 기억도, 행동도, 말도 희미해지고 어눌해지는 다른 어르신들 틈바구니 속에서, 오늘도 여전히 지치지 않고 손뼉을 쳐대며 아리랑을 외치는 그녀의 꺼지지 않는 원동력은 불가사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나 열렬히 버텨주기를 간절히 응원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