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리 와 봐, 선생니임~ 이리 와 봐여, 빨리!!”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801호실에서 들린다. 무슨 큰일이 생겼나 싶어 바짝 긴장이 된다.
“네, 어르신. 왜요? 왜요?”
“저 봐, 저 봐~ 휴지 훔쳐. 저 노인네, 또 남의 휴지 훔치고 있다고오”
다른 어르신의 옷장을 뒤지다가 딱 걸린 ‘휴지 헌터’ 이연자(가명) 어르신의 당황한 모습이 귀여워서 맥없이 웃음이 터진다. 숨이 넘어갈 듯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 보면 언제나 이렇듯 실소를 자아내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연자 어르신 맞은편에 누워 있는 ‘유쾌한 오령 씨’ 김오령(가명) 어르신은 연자 어르신의 행동을 꼬치꼬치 일러바치고 흉보는 재미로 사는 분이다.
하루에 몇 차례씩 그녀는 꼭 묻지도 않는 연자 어르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우리들에게 세밀하게 보고한다. 그리고 기저귀를 베개 밑에 몰래 감춰 놓았다는 둥, 왜 그렇게 쉴 새 없이 먹느냐는 둥, 똥은 왜 그리 많이 싸냐는 둥 연자 어르신 얘기를 하느라 입이 다 아플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못마땅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열을 낸다. 잘근잘근 오징어 다리 씹듯 험담할 대상인 연자 어르신이 옆에 안 계셨다면 무슨 낙으로 살까 싶을 정도다.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해 종일 누워 지내야 하지만, 그녀는 인지 능력이 비교적 좋은 편이다. 용변을 보는 즉시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밤낮으로 요구하면서도 우리가 바쁠 때는 늘 미안해한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항상 큰소리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하루 종일 누워서만 생활하다 보니 우울할 법도 한데 그녀는 늘 유쾌해 보인다. 우연히라도 그녀와 말이 엮여 이런저런 사연을 들어주다 보면 중간에 끊기가 힘들 정도로 그녀는 수다스럽다. 시간과 씨름하느라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야 할 때면 그래서 더욱 난감하다. 뒤통수에 전해져 오는 서운해하는 그녀의 표정이 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연자 어르신 흉보는 재미가 으뜸일 것 같은 그녀는 의외로 정이 많다. 가족들이 방문하면서 사온 과일이나 빵 등을 당신은 조금만 먹고 언제나 우리에게 모두 떠넘긴다.
“나는 원래 이런 건 안 좋아해. 그러니까 나머지는 선생님들이 얼른 먹어. 퇴근 전까지 배 많이 고플 텐데... 아, 어서~”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면 오히려 섭섭한 표정을 하며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네, 잘 먹겠습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라고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비로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때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 인자한 할머니로 변한다.
다른 어르신들에 비해 가족들이 비교적 자주 오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늘 심심해하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가 돼 주는 것은 TV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인기 있는 드라마 시간과 줄거리를 줄줄 꿰고 있다. 네 분 어르신이 거주하는 801호실에서 그녀만이 TV를 제시간에 볼 줄 안다. 나머지 세 어르신은 아예 보지 않거나 웬일인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연하 작용이 원활하지 않고 소화 능력도 떨어져서 항상 죽을 먹어야 하고, 밤에 종종 고통스럽게 기침을 연속적으로 하는 걸 보면 유쾌한 오령 씨라도 기분이 다운될 법 하지만, 아침이 되면 그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연자 어르신 흉부터 본다.
“저 봐, 저 봐. 아, 뭔 휴지를 빤쯔 안에 저렇게 많이 깔고 지랄이여~. 기저귀도 깔고 그 위에 휴지를 도대체 몇 장을 까는 거여?”
“저그 침대 밑에 좀 뒤져 봐. 기저귀 몇 장 숨기는 거 내가 다 봤어. 긍께 기저귀 주지 말아.”
“아이고, 저 노인네 또 똥 싸는 가베~ 에효, 정말 내가 못 살아. 같이 살 수가 없어”
유쾌한 오령 씨의 지루한 하루는 오늘도 변함없이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