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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천국에는 요양원이 없다

병아리 요양보호사가 쓴 좌충우돌 요양원 24시 - 프롤로그

프롤로그   

            


내가 처음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 건 자격증을 딴 지 3개월 후, 경기도에 있는 꽤 규모가 큰 의료법인 산하 요양원에서였다. 2교대가 뭔지 3교대가 뭔지도 모르고 낮 근무만 한다고 해서 덜컥 지원했다가 한 달 만에 지옥에서 탈출하듯 사표를 던졌다. 

생각보다 체력이 약했던 탓에 생전 처음 맛보는 강도 높은 노동의 무게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생 제대로 된 육체노동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백면서생이나 다름없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날마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피곤함에 쉬는 날조차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맥없이 누워있어야만 했다. 

어떤 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마저 부쳤다. 게다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 출퇴근길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느 순간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결국 과로로 쓰러져 영원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살기 위해 무조건 쉬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요양보호사 일을 그만두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시설장은 초보인데도 그저 씩씩하게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며 미안해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했다. 치를 떨 만큼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나서 나는 다시 사주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무료했던 몇 달이 지나자 수도권에 있는 신설 요양원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체력 걱정이 앞섰던 나에게 그곳은 예상 밖으로 맞춤형 일자리였다. 요양원은 문을 연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탓에 전체 어르신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8층에서 남녀 어르신들을 분리할 목적으로 올라온 네 분의 남자 어르신만 계신 9층 생활실 담당자로 배정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에게 그런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 관리자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배려였는지 아니면 과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약간의 여유가 생긴 나는 좌충우돌하며 요양보호사로서 하루의 일과를 성실히 해나가려 노력했다.


물이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안에서는 개구리도 환경에 조금씩 적응하며 한계에 이르기까지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결과적으로 나도 그렇게 서서히 길들여지면서 조금씩 버티고 견뎌낼 수 있었다. 

초보였지만 시기적으로는 다른 요양보호사들보다 먼저 들어온 덕분에 기죽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소위 흔하다는 선임들의 갑질도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남다른 관심과 넘치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요양원은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의 여성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라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을 거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물론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리 일이 버거워도 끈끈한 동료애로써 힘겨운 시간을 지탱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0년 이상을 베테랑 요양보호사로 근무했으면서도 항상 선임 대접을 해주고, 지나치리만큼 배려하고 또 존중해 주었던 동료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께는 지금도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강력한 연대와 협동이 없다면 결코 유지해 나갈 수 없는 것이 이 분야의 일이다. 

조금은 신산했을 삶을 누구보다 뜨겁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들을 보며,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던 나의 독선과 아집은 시나브로 무너졌다. 그들은 내 인생의 스승이자 선배로서 아낌없이 나에게 선의를 베풀어 주었다.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동료 요양보호사들과 부대끼며 웃고 울었던 지난 시간들이, 내게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얻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지금은 잠시 요양원 일을 그만두었지만,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 어르신도, 이미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얼굴도 한 분 한 분 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시대의 화두가 돼 버린 코로나 19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시설에 계시는 어르신들이다. 그들은 노환에다가 수많은 기저 질환에 노출되어있는 그야말로 약자 중의 약자이기 때문이다. 단지 고령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삶과 죽음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내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때는 가장 아름다웠고 고귀했던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인간의 숭고한 가치는 언제 어디서든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며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르신들과 동고동락했던 잊지 못할 순간들을 이제는 기억을 더듬어 풀어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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