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이후 몇십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선생님으로 불렸던 내가 요양보호사라는 전혀 생소한 직업을 택하게 된 것은, 학력의 고하를 떠나 무엇보다 이 땅에서 나이 많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데 있었다.
이미 50대 중후반을 훌쩍 넘긴 나이.
더 이상 치열한 교육 현장에서 살아남기에는 능력이 부족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딱히 모아놓은 재산도 없으며, 무조건적으로 의지할 사람조차 없는 처지에 오랜 시간 겨우 지탱해 왔던 학원 사업마저 접게 되었다.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러한 평범한 질문조차 끝도 없는 자괴감을 키웠다.
처지가 어려웠던 친구가 지나가며 언급한 ‘요양보호사’라는 말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던 그 당시에 불현듯 떠올린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요양보호사나 해야겠다”
라던 친구의 말이 솔직히 내게는 새로운 희망이자 절망이었다.
나는 그 당시 요양보호사가 도대체 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막연히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도 나이 든 여자들이 흔히 할 수 있는 일로 요양원에서 노인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조금은 천한 일이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나 아닌 다른 누구를 위해 희생하거나 봉사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까칠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나였다. 따라서 ‘내가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선뜻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위안 삼아 첫발을 뗀 요양보호사 교육이 시작되자 나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늘 젊다고 생각했던 나도 어느새 초로의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날이 곧 머지않아 온다는 것, 노인은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내가 가야 할 길을 조금 먼저 걷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은 부정할 수 없는 나의 미래였다.
그리고 요양보호사는 ‘노인 돌봄’이라는, 가족이라도 쉽게 할 수 없는 힘들고 고된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 어르신들이 묵묵히 가야 할 마지막 삶의 현장에서 함께 웃고 울면서 커다란 위안이 되고, 때로는 가족보다 더 끈끈한 동반자가 되어 주는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노인들의 위태로운 건강과 불안정한 심리, 치매라는 괴물과의 사투 속에서 그들은 하루하루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직업인이고 전문가였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계속할 수 없는 직업이 요양보호사다.
투철한 직업의식과 봉사 정신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열악한 처우와 환경 속에서 오래 버텨낼 수 없는 것이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다. 남다른 보람으로 한없이 뿌듯해하다가도 오랜 시간 함께 한 어르신들의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또한 그들이지만, 살아남아 있는 다른 어르신들 때문에 기꺼이 포커페이스가 돼야 하고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하는 프로들이다.
오랜 시간 교과 교육과 현장 실습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노인 돌봄 과정은 참으로 유익했다. 그것은 타인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훈련이었다. 내 삶에서 변방으로 방치하다시피 한 연로한 부모님을 새삼 떠올리며 진심으로 반성하게 했고, 건강하게 살아계심에 안도의 한숨과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들도록 했다.
물론 현장에서 맞닥뜨린 요양보호사 일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고,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무엇보다 젊은 날 한때 가장 아름다웠으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며 그로 인해 신산한 삶을 살았을 무명의 어르신들이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름 없이 하나둘 스러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요양원에서 무관심 속에 여생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혹은 노환으로 하루 종일 침대에서 누워 지내야 하는 노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귀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요양원에 한 달에 한 번 면회 가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안심하거나 요양원에 맡긴 것조차 잊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닌가.
시설에 있는 노인들에게도 따뜻한 피가 흐르고, 외로움과 불안함에 휘둘리는 섬세한 감정이 있다. 변화 없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그들만의 포복절도하는 웃음이 있고, 아리도록 짠한 눈물이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팬데믹, 코로나 19가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암울한 시대.
어르신들은 단지 힘없는 노인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신종 감염병 앞에서 속수무책 삶을 거세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들은 확진자로 사망하는 순간 그럴듯한 장례식은커녕 산업 폐기물인 양 다뤄지고 있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서 마치 코로나 19 양성소인 것처럼 외면받는 요양원과 그 속에서 잊혀가는 그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 가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욱 새겨두어야 할 그들의 마지막 삶의 모습과 죽음을 생생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그동안 요양원에서 겪었던 일들을 보다 진솔하고 편견 없이 전달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 글을 보는 일부 독자들은 어쩌면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결코 누군가가 희화화되거나,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단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당연한 듯 소외되고 잊히는 ‘어르신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느꼈을 외로움과 서운함에 잠시나마 함께 ‘공감’하는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모두는 결국 노인이 된다.
지금 이 순간,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녹녹지 않은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요양보호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모쪼록 그들 모두가 건강하고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