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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Apr 17. 2021

상실

한여름 따분한 일상이 시작되고

언제나처럼 바짝 독 오른 태양 

거울은 항상 그대로인데

서랍처럼 낡아가는 내 유년의 얼굴

낯설다. 

그림자만 남은 깊이 없는 슬픈 눈이   

  

때로는 흔적 없이 돌아가고 싶다.

피를 토하듯 발랄했던 

조그마한 운동장으로.

갈래 머리 꼬맹이들이 우쭐거리며

너울너울 춤추었던 어스름

무너져가는 시간을 알지 못한 채

한 무리 속의 소녀는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하악거리는 숨소리만 교정을 가득 메우고

어두울수록 밝아졌던 그곳에서

소녀는 내내 

배를 움켜잡고 웃고 있었지.  

   

도깨비불 같던 시간 속에

비상하던 꿈도 사라지고, 

거울 속에 비친

낯선 그녀가, 그녀의 추억들이

흔들리며 걸어가고 있다.

태양을 등진 초라한 그림자만 길게 매단 채

신발도 없이

타박타박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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