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고요하지 않다. 나의 마음자리도 자연의 섭리인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 요치 않다. 마음의 등을 돌리고, 안으로 안으로 숨으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에 비가 내렸다. 세상 것은 다 하찮고, 나의 삶이 녹록지 않다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비는 나의 어깨를 사랑하는 이에 갖다 붙이고, 아이의 하교를 거들게 한다. 손에 우산을 쥐고, 다른 손에 작은 우산을 쥐고 발길을 재촉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삶에 서있다.
한 때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을 비판하던 적이 있었다. 저 시간을 내게 나누어 준다면 24시간이 모자란 나의 삶이 윤택해질 거라며 믿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삶의 중심에서 한없이 멀어진 상태다. 죽고 사는 문제에 목을 매며, 일렁이는 마음을 잠재울 길이 없다. 창백한 얼굴의 나날들이다. 많은 인풋들과는 다르게 아웃풋은 한없이 줄어 간다. 삶에서 멀어진 삶은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가엾다. 나를 가엾게 여기는 태도가 견디기 어려워 몸을 재빨리 움직인다.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한다. 땀을 흘리고 땀을 닦기를 반복하다 보면 마음에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렇게 삶은 또다시 내가 하는 일들이 의미 있었음을 말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힘을,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노력을, 지나가는 시간을 관망하는 이의마음을 이해한다. 비난하고 비난받는 시대에 사는 것 같다가도 누구도 비난한 적 없음을 깨닫는다. 읽고 쓰지 않아도, 살아내지 않아도, 내가 하루 종일 한 것이 아이를 픽업 간 그것뿐이더라도. 살아있음에, 오래도록 착하게 살았음에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빗길에 아이가 첨벙거렸다. 옷을 전부 적시고, 활짝 웃었다. 삶이 미소를 짓는다. 고독으로 침잠하던 나를 분주하게 한다. 땀이 난다. 땀 흘리며 무엇을 했던 적이 언젠가. 별 수 없이 씻고 소파에 앉는다. 다시금 비가 내리는 창이 보인다.
세상은 여전히 고요하지 않지만, 더는 고요치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