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말

by 김소영

꽃샘 추위가 왔다. 이미 얼어붙은 대지에 오는 이 추위는 다시 오는 겨울이 아니다. 다가올 봄을 알리는 겨울의 마지막 인사다. 이별이라 생각하면, 지긋지긋했던 살얼음의 기억들도 못내 아쉬워 겨울 내 안 끼던 장갑도 하루 더 껴 보고, 부츠도 하루 더 신어 본다. 이별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름 만으로도 미웠던 감정을 눈 녹게 한다.


마음이 고플 때도 소리가 나는 걸까.

꿈에 할배가 찾아왔었다. 애쓰지 말아라, 가까이 있으니, 할배는 아무 말도 없이 그리 말했다. 사랑하는 이들은 그렇게 나를 살리곤 한다. 내가 죽음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게 하려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그림자 곁을 지키고 서서 빛을 낸다. 꿈이었기에 그렇게 달콤한 미소를 선명하게 보았겠지. 할배는 그렇게 한참을 그리워하던, 살아서나 보여주시던, 꿈에도 본 적 없던 미소로 나를 살게 했다. 가까이 오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배가 나를 삶으로 밀어냈다.


어제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여러 번 고른 조심스러운 말투에는 다정함이 묻어 지난밤 나를 밀어내던 할배와 같은 방향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삶으로 사랑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봄을 맞길 바라는 마음으로 겨울은 우리에게 이별을 고하고, 내가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배는 죽음 앞을 지키고 서서 내게 등을 보였다. 내가 더 행복하길 바라는 무언의 속삭임들은 그렇게 나를 밀고 당기며 쉼 없이 애쓰며 나를 살게 한다. 나를 버림으로 내가 구원받는 것처럼 이별함으로 사랑하는 것은 그 어느 사랑보다 아름답다.


친구에게 두렵다고 말했다. 항암을 맞는 것도, 자꾸 나약해지는 것도, 그러나 실로 두려웠던 것은 내가 그들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들이 나를 잃을 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사랑이 고픈 나에게 꿈은(꿈에 나온 나의 사랑은) 그렇게 나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멀리서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하면서, 절대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저으면서. 꿈같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잊어감으로 아주 가끔만 기억함으로 더 많이 사랑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무겁게 삶에 발을 내리고, 아주오랫동안 이별한 채로, 그 사랑이 더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이다. 삶으로 삶으로 나를 당기는, 수많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꿈에,


할배가 찾아왔다

애쓰지 말아라

가까이 있으니,

암말 없이

그리 말했다


그렇게 나는 살아,

최대한 멀리 서서

사랑하는 이를 잊어간다


이따끔씩 찾아오는 꿈에

그렇게 빛처럼 서서

꿈처럼 희미한 미소로

당연한 듯 내치는 손

오지 말기를 바라고

더 멀어지기를 바라는

나를 살린 이를 기억한다


할배가 멀어져간다

죽음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애쓰고 있으니,

암말 없이

그리 말했다


가까이 갈 수록

더 살아있는 것은

잡고 싶은 내 손을 잡지 않고

나를 삶으로 삶으로

더 밀어내는 그 손,

그 손 때문이다


꿈에만 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