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도 없으면서 암은 무슨

by 김소영

동생의 결혼 일주일 전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동생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매일 서로가 예쁘다 재는 우리 자매 사이의 농담처럼 기죽지 않으려 사 둔 핑크 슈트도 그저 그렇게 옷장에 머물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것은 내게 정확한 보호자가 없다는 것. 남편은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고,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부모는 내게 관심이 없다. 남편이 나의 보호자 반을 담당하고, 나머지 반은 동생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동생이 결혼을 앞두니, 엄마는 내게 당장 그 허튼짓을 그만두라고 했다. 결혼 전에 뭘 하는 짓이냐며,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이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음에 틀림없다.

화가 났다.

나는 보호자가 없는데, 친정도 시댁도 도와줄 수 없는데, 우리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왜 나는 아파야 할까.


주변의 많은 이들이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물었다. ‘병원 혼자 다녀왔어? 왜 그랬어?’ 나는 늘 병원을 혼자 다녔다. 어렸을 적부터 줄곧. 국민학교 때도 혼자 다녔다. 자주 아팠는데, 아플 때마다 혼나기 일쑤여서 아픈 내가 싫었다. 그때부터 서러워서 글을 썼다. 힘든 일이 있어도 글을 쓰고 나면 남의 일 같아서 괜찮아졌다. 아름다운 시는 나의 비극적인 상황도 아름다워 보이게 했으니까.

이후로 줄곧 바닥을 치며 힘이 들어도 글을 쓰며 버텼고, 마침내 아이들을 생겼을 때에는 큰 기쁨으로 글을 쓰지 않아도 살만큼 행복했다. 그런데 나는 내 남편의 부모도 바꿀 수 없고, 나의 부모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가정 안의 행복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순간순간 병을 얻은 것도 이쪽 혹은 저쪽의 부모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어른스럽지 못한 말들은 말로 전하지 못한 채 글로 썼다 지웠다 하며 나의 원망과 화를 삭였다. 그러나 터트리지 않고는 이제 살 수가 없어 글을 쓴다. 무너진 것이 틀림없다.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실격’을 쓰고 자살했을 때, 그의 삶이 그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나는 정말로 나의 자전적인 글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불행이 나를 잠식하고,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롤러코스터를 타고 두서없이 위기 절정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나의 이야기만큼 극적인 이야기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나에게 왜 이 많은 불행을 주셨을까.

나는 내가 느끼는 많은 감정들을 글에 가두어 나의 현실을 나의 불행을 살아 내기 위해 몸부림쳤는데, 내게 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시는 걸까.



엊그제 혈액암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아는 백혈병과 같은 것일까.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못되는데, 이제 더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불행히도 이제 한계인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니,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수면 아래, 그 어디쯤으로.

글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니까, 글은 내게 말이니까, 지금 내가 할 말이 없어 그런 거라고 위로를 건네는 말에 공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머리와 입에 맴도는 수많은 말들을 털어내고 싶지만, 전부 욕뿐이라 창피했다. 이런 글 따위, 내가 쓰고 싶지도 않은 이런 글 따위 뭣하러 쓰겠는가.

그런데 갈비뼈가 부러질 거 같은데도 글이 쓰고 싶다. 내가 하는 이 한없이 부정적인 글을 누구라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훗날 부끄럽겠지.


나는 왜 보호자가 없는가. 왜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는가.

죽고 싶을 만큼 살기 힘든 건 없다고? 노력하지 않는 거라고? 패배주의라고? 능력주의 Bull shit.


나는 그저 나의 아이들의 미래에 내가 있고 싶을 뿐이다. 내 아이 중학교 가고 대학교 졸업하는 모습 보고 싶을 뿐이라고. 너무 많이 사랑해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 내게 미래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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