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공포

32살은 너무 어리잖아

by 김소영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저만의 속도를 가지고 찾아온다.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 아닐지라도 공포라는 것이 함께 오기 시작하면, 인생이 죽어가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다. 어쩌면 이 공포라는 것이 죽음이 오기 전에 삶을 잡아먹어 버리고, 죽음은 이미 죽어버린 삶에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몸이 안 좋아진 지 꽤나 긴 시간이 지났다. 기침이 계속 나는 데다, 무기력함이 혹시 우울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몸 구석구석에 파고들었다. 동네 의사는 코로나 후유증일 거라며 의뢰서를 써주었고, 어쩌다 보니 대학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실 힌트는 많았다. 너무 자주 아팠고, 자주 나른했다. 사실 32살을 미리 살아본 적은 없기 때문에, 32살이 얼마나 건강해야 정상인 지는 알지 못했던 거 같다. 특히나 애 둘 낳은 서른두 살이 얼마나 건강해야 적당히 건강한 것인지는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후유증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말했다. ‘가슴에 4.8센티 혹이 있으세요’ 처음에는 유방암이라는 소리인 줄 알고, 그냥 때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그렇게도 끝까지 무지한지, 폐와 심장 그 어디쯤이라고 했다. 젊은 의사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한껏 두들겨 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더 놀란 걸까. 눈물이 볼을 타 내려오기도 전에 의사는 휴지를 건넸다. ‘많이 놀라셨죠’ 그렇다. 놀란 것이다. 놀라서 그런 것이다. 주마등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잠깐 사이에 많은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삶은 생각보다 빠르게 죽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래 글을 쓸 수 없었지만, 머리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공포로 가득 찼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말이 턱 끝까지 찾지만, 기침이 그를 앞질렀고, 다만 목까지 차오른 말을 가슴 깊이 눌러 넣게 했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말을, 글을 하지도 쓰지도 못한다 생각하니 또 괜히 눈물이 났다. 그래서 웃었다. 기침을 하다가도 웃고, 아무렇지 않은 척 기도를 부탁할 때도 웃고, 울다가도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영수증에 보니까 내가 32살 이더라고, 암 걸리기엔 너무 젊잖아?’ 참 우스운 말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뭘 그렇게 안 다는 듯이 자조적으로 떠드는지.

혼란스럽고 감사했다.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에 혼란스럽고, 덕분에 감사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의 의지로 알리고, 또 알리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쫓아오는 공포를 막아설 수 있음에 감사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둘째가 늘 부르던 노래를 목청껏 불렀을 때, 어찌나 웃기고 귀엽던지, 앞 좌석에서 울고 있는 나와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 순간에 나는 공포와 멋지게 맞서고, 감사해 할 수 있었다. 여름 성경학교에서 무대 위에 서서 멀리 서도 나만 바라보는 겁먹은 나의 아이들을 보며, 어쩌면 이러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는 공포에 웃음기 넘치는 눈물로 맞섰다. 허허거리면서, 우리 애들 박자 안 맞고, 나만 보는 거 보라면서, 긴장해서 울겠다면서. 껄껄 웃으며, 울었다. 혼란과 감사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그동안의 복잡한 마음과는 생경하리 만큼 달랐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2주를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전에 몇 번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을까 싶어 또 겁이 낫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순간에 들숨이 목을 조이고, 날숨이 공포를 내뱉었다. 참아야지.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생각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이 터졌을 때에는 글을 쓰는 것이 꽤나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쓰는 글이라 뒤죽박죽일지라도, 이렇게라도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로 오늘을 견딘다. 아직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저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라고. 내게 찾아온 것은 공포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저 처음이라 겁먹은 것이라고. 내게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