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따위에 무너졌어도

같이 비 맞아 줘야지

by 김소영

마음에 법칙이 있다면(실제로 ‘마음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는 것을 안다), 나의 법칙은 응당 부서져 있다고 볼 수 있다. 30년 남짓한 시간을 살면서 견고하게 쌓아온 나의 마음의 벽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가치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또 고집이라고 할 수도 있는 삶의 방식은 세워진 줄도 모른 채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병이라는 돌멩이로 몇 대 맞고 나니, 견고해 보이던 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사랑이 나에게 가장 큰 가치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희생과 함께하는 말이어서, 비 오는 날 자신의 일을 잠시 접어두고 기꺼이 아이에게 우산을 가져다주는 것을 사랑이라 여겼다. 장대비를 맞으며 빗길을 달리다, 길 모퉁이 공중전화에서 받지도 않는 전화를 한참 들고 선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다 여겼다. 그러나 사랑은 사실 지구처럼 둥근 것이어서 지평선 너머에 진실이 있는 것이었다. 네모난 지구는 진실이 아닌 것처럼 네모난 사랑도 진실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나의 반쪽짜리 사랑은 쉽사리 무너졌다. 쿡쿡 찔려오는 가슴의 통증과 옆구리 통증 따위가 나의 최고 가치를 무너뜨렸다.


처음에는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따위 병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 무너지나. 웃으며 넘길 줄 알아야지. 다들 암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잖아, 할 수 있다는데 왜 이렇게 무너져 있어?, 혼자 자조 섞인 질문을 쏟아 내기 일쑤였다. 아이도, 남편도, 가족과 친구도 지금 내 감정의 훼방꾼일 뿐, 격려나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점차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늘 있었던 우울감이 이제 그 싹을 키워 나무처럼 자랐나 보다고. 그래서 그 나무를 베어내려고 즐거워 보이는 일이란 일은 전부 찾아서 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사실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이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감정에서 오는 상실감, 질투, 자괴감,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랑의 다른 면에 숨어있었다. 거기까지 끌어안지 않고 서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슬픈 결론만 남긴 채 나의 세계가 무너졌다.


여전히 무너진 채로 폐허가 되어 남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보기 시작했다. 줄곧 나는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행복하고 싶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 말고, 평탄하고 굴곡 없는 삶을 살면서 당연한 행복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삶은 나의 불안과 불행이라는 모래로 만든 사랑의 벽돌로 지어지고 있었다. 무너질 밖에. 결국 다 무너지고 남은 것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나의 행복이었다는 사실만 남겼다.


참으로 단순한 사실을 이렇게나 어렵게 알게 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수술과 항암,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고, 이제 방사선이 남았지만, 쉬울 리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다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끝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행복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제 당연하게 나는 끝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끝은 없다. 병은 나와 함께할 것이고, 완치라는 이름 아래 평안을 찾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고개를 숙여 나의 티끌과 나의 그림자를 돌볼 것이다. 거짓 사랑 말고, 진짜 사랑으로 얻은 행복을 위해서. 내 그늘 아래서 쉬는 아이들의 뜀을 보기 위해서.


이제야 삶에 미련이 생긴 거 같다. 이제야 다정한 주변이 보인다. 나와 무관한 다정함이 아니라, 내가 다정해지게 만드는 그런 사랑. 행복은 발 밑에 있다는 말, 사실은 나의 그림자까지 사랑해야만, 나를 사랑하고, 그래야만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닐까.


이제라도 그동안 없던 미련으로 삶을 꼭 껴안고 절대 놓아주지 말아야겠다. 더 미련 맞게 사랑하면서 더 미련 없이 살아야지. 희생함으로 사랑하는 거 말고, 기껍게 사랑함으로 행복해야지. 사랑이니 행복이니 그만하고, 같이 비 맞아 줘야지. 우산이 있든 없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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