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모포트를 제거하던 날
케모포트를 빼러 가던 날이었다. 이제 다 끝났구나 싶었다.
‘어떻게 내게 이런 날이 오지?’
항암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케모포트를 몸에 집어넣던 날, 나는 이 작은 기계를 몸에 집어넣고 빼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수술도 아닌, 시술이라 했는데, 어깨를 타고 내려와 베드에 흥건하게 고이던 피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첫날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마지막날 나는 무척이나 떨었다.
아주 작은 간이침대에 누웠다. 간호사님은 나의 파란 모자가 예쁘다고 하셨다. 명품이냐며. 얼굴이 예뻐서 너무 잘 어울린다며. 나는 활짝 웃었다. 아이가 둘 있으시다고 했다. 아들 둘이라 무척이나 말을 안 듣는다며, 내게도 아이가 있는지 물으셨다. 내가 아들과 딸이 있다고 했더니,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면서 치켜세워 주셨다. 젊어서 성공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아이 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지 싶어 미소로 답했다. 동네 카페에서처럼 우리는 아이들 흉도보고, 부끄러운 자랑도 하면서 금세 친해졌다. 의사 선생님이 다가오시며,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냐고, 자신도 끼워 달라 하셨다.
- 엄마가 씩씩하니까, 아이들도 씩씩하겠네
- 왜 착한 사람들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금방 나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 셋은 여느 아줌마들처럼 웃고 떠드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끝.
- 고생하셨어요!
- 와, 선생님이 예쁘다고 엄청 예쁘게 꿰매 주셨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십 분처럼 흘렀다. 아프고 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버텨내는 시간들이었다.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아이들을 문밖에 가두고 입에 수건을 물었다. 그리곤 정말 죽어가는 엄마처럼 문을 열고 나가 활짝 웃었더랬다. 그런데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이제 다시는 저 작은 기계를 몸에 넣지 않겠다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두 분 선생님들은 두 분이 내게 얼마나 큰 선물을 주셨는지 모르시겠지만, 나는 작은 상처 두 개와 아이들과 함께할 날들을 맞바꾸고 살아남았다. 예쁘게 꿰매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이 글을 쓰게 되기까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는데, 이제야 비로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어느 곳에나 계시는 아기 어머님들, 제게 다정하게 말 걸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의 다정함이 제게 꿈꿀 수 없었던 미래를 선물해 주셨어요.’
오래도록 글이 쓰기 싫던 나날이었다. 아마도 슬프고, 힘든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나날들 중에 나를 살게 하고, 감사하게 했던 날들을 기록할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 미래를 살게 되어 기쁘다. 살아 있어 기쁘다.
*케모포트 : 정맥(혈관)을 통해 심장 가까이의 굵은 혈관까지 삽입되는 관(카테터)의 일종으로, 동전만 한 크기의 원통형 기구를 피부 밑에 이식해서 여기에 혈관으로 통하는 주사관이 연결된다. 항암제와 항생제*혈액성분과 같은 정맥주사가 계속적으로 필요한 환자의 치료에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