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시작
호흡곤란이 왔다. 암이라고 생각하고 3개월, 암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3개월, 총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반년 간 들이붓던 약들의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보통이라면 꼬박 이틀은 걸렸을 응급실 대기가 몇 시간 만에 끝나고 병동으로 올라온 날, 의사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얼굴로 ‘잘 왔다고 했다.’ 다음 예약을 기다리지 않고 온 것을 칭찬받아야 할 일인지 생각하던 찰나, 분명 ‘암이 아닙니다’라고 웃으며 얘기했을 당시의 의사 얼굴이 저 얼굴이 맞았는지 잠깐 어지러웠던 것 같다.
‘암이든 아니든, 폐와 심장을 누르고 있는 것을 떼어내야 할 거 같아요.’
남편도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린 그냥 떼어내면 그만 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걸리적거리는 사마귀라도 떼어내듯이 며칠 만에 나는 수술대 앞에 섰다.
수술 날은 수능 날이었다. 왠지 모를 설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오늘만 지나면 끝이다라는 생각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까지 했다. 당시 SNS에 수술도 수능도 파이팅이라고 한마디 남겼었다. 대체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이들에게 혹시 모를 인사 따위도 하지 않고 와 버렸다. 긴장하지 말자고 해서 긴장을 너무 풀어버려서였을까.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속옷도 채 입고 있지 않았는데, 왈칵 생리가 터져 나왔다. 이 순간에도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어 웃었고, ‘속옷을 입으면 안 되는데 이를 어쩌나’하는 생각에 갑작스레 짜증이 밀려왔다. 남편이 생리대를 구하러 간 사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보호자도 없었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좀 있으면 느낄 해방감에 미리 취해 있었다.
간호사분이 주신 맞지도 않는 생리대를 하고, 수술 대기실에 누웠는데, 왜 하필 내 옆에 아기 엄마가 눕게 되었는지. 아기 엄마는 두세 살 남짓한 아이가 깰까 봐 안고서 엉거주춤 베드에 누워있었다. 수술에 들어가야 해서 아이를 내려놓자마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추웠을 것이다. 엄마의 살결이 제 몸에서 떨어지는 것이 춥고, 또 추웠을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다시 안았다. 제 몸인 양 아이를 꼭 안고 같이 수술실로 들어가겠다 했다. 어느 누구도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입술이 퍼렇게 되도록 입술을 깨무는 그녀였지만,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이도 다시 잠이 들었다. 수면제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는 그 베드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등을 움츠렸다. 떨어지고 싶었다. 등을 돌리고, 아이를 위해서 기도했다.
아이의 수술실 불이 들어오고 나서, 나는 천장을 보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나는 분명 두렵지 않았는데, 순간 두려워졌다. 다시는 내 아이들을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치가 떨렸다. 바들거리는 나의 이가 요란스럽게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인사를 하고 올 걸 그랬다고. 학교와 유치원에 간 사이에 이렇게 엄마가 다신 돌아오지 않으면, 학교와 유치원에 다신 가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내 살결을 잠시라도 부딪히고 왔어야 했는데, 죽는 것이 두려웠다. 또 처음이었다.
나는 늘 사는 것이 두려웠다. 힘들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 세상은 악하고, 나는 나약하고, 기댈 곳 없다는 한탄만 했었다. 그런데 죽는 것이 두려웠다. 아이들이 나를 잃을 까봐, 내가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 수 없을까 봐, 태어나 처음 살고 싶었다. 살고자 기도한 적 없던 내게 그 짧은 순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부족한 기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수술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 사이 남편은 받아본 적도 없는 번호로 숱한 전화를 받았고, 나는 살았다. 주렁주렁 무언가 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신 눈감고 싶지 않았다. 요란하게도 울었다. 살게 되어 너무 기뻤다. 다시금 말을 바꿔 암인 거 같다고 말하는 의사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살았고, 그것으로 내가 쓸 모든 기도를 다 썼다고 생각했다.
퍼렇게 입술을 깨물며, 울며 웃던 엄마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의 아가들이 보고 싶었지만, 전화 걸지 않았다. 이를 악 물었다. 앞으로 시작이었으므로. 이제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