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나의 힘>

by 김소영

작년 오늘, 유서를 썼다.

‘혹시 내가 갑자기 죽게 되면, 누구도 오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짧게 슬퍼하고 모두 우리 수현이 수민이를 보살펴 주셨으면 좋겠다.’로 시작하는 열 줄 남짓한 유서는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은 채로 일 년을 넘겼다. 기특하다. 그 짧지만 긴 글이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과 집약된 나의 슬픔들이 이제는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지.


이주혜 작가님의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를 읽으며 ‘동감’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엄마에게서 딸로 대물림되는 슬픔과 그 슬픔에 대한 무력함이 내가 아픈 동안 줄곧 삼켰던 고통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나의 엄마의 엄마는 엄마가 나를 낳던 해에 돌아가셨다. 엄마 나이 스물 넷이었다. 그리고 내가 스물넷에 첫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엄마는 고통스러워했다. 좀 이른 갱년기였다. 밤낮으로 끓어오르는 열을 잠재우느라 엄마는 나의 아가를 보러 오지 않았다. 스물넷 이후의 삶이 결단코 쉽지 않을 것임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나의 삶과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몇 년이 지나 엄마는 나와 나의 아가가 미웠던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죽음이 두려웠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평행이론과 같은 그 두려움의 기원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그리고 작년, 나는 그 공포와 마주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 아이들이 아픈 것이 너무 싫어서 습관처럼 기도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아픔 다 내게 주시라고. 그 기도에 응답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경솔한 나의 기도를 농담 삼았다. 조금은 가벼워 질까 싶어서. 유서를 쓸 때쯤부터 꿈에서 상복을 입고 서 있는 엄마를 보았다. 꿈에서 조차 나는 엄마보다는 아이들을 보았다. 어서 가라고, 이 자리를 떠나라고 사진 속의 내가 울었다. 꿈은 항암을 하는 내내 계속되어 이것이 꿈인지 환영인지 헷갈리는 순간까지 찾아왔다. 엄마 혹은 내가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나인 것이 다행이라고, 또 아이들에게 대물림되지 않고 내가 가는 것이 또 다행이라고 되뇌었던 것 같다. 정상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엄마에게서 엄마의 인생을 물려받는 그 공포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를 잡아먹었다. 살아났음에 감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기쁘지 않다는 것은 산 자로 좋은 자세가 아니었다. 그래서 입 밖으로 감사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누군가 물으면,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거짓으로 감사했다.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감사로 매일을 산다고 했지만, 감사는 나의 힘이 아니었다. 세상은 여전히 슬프고, 그 많은 슬픔들 중에서 작은 기쁨을 퍼 올리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마치 잡을 수 없는 찢어진 뜰 채로 물고기를 떠올리는 것처럼 행복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저 앞에 저렇게 많은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는데,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없는 기분. 떠올리는 것을 멈추는 것 밖에는 할 도리가 없었다. 그 많은 기쁨들에 등을 돌리고, 나는 나의 슬픔에 잠겼다. 내가 가엽게 여기는 것들, 나의 슬픔이 눈가에 고이게 하는 것들에 애정을 두기로 했다. 떨어지는 슬픔을 맛볼지라도 심어서 얻는 보람을 얻어야 살 수 있었다.


나의 슬픔에만 잠겨 있을 때에는 솔직히 힘들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슬픔을 안아주려고 하면 할수록 자괴감만 들뿐, 성장하는 보람 따위는 느끼기 어려웠다. 그러나 안으로 말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주변으로 잠깐 시선을 돌렸을 때, 처음 빛을 본 싹처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혈액내과가 있는 같은 층에는 소아암 병동이 함께 있다. 그 길로는 부러 다니지 않았다. 혹시 주사를 맞기 위해 그 길로 들어서면, 애꿎은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뽀로로 노래만 여러 번 되뇌었다. 그럼에도 가끔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이 주체를 못 할 때면 나는 다시 속절없는 경솔한 기도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들의 아픔을 내가 가지고 가고 싶었다.


머리를 민 아이의

그 아이 옆에 선 엄마의

그 손을 메 만지는 엄마의 엄마의

그 옷을 만지작 거리는 큰 아이의

미소로 답할 수밖에 없는 간호사의

대답할 수 없는 의사의

그 많은 슬픔들을 모아 버리는 미화원의

새벽을 가르는 울음소리의

다시 뜨는 해의

날아가는 새 두 마리의

비 내리는 하늘과 고개 숙인 갈대의

기세 없는 손으로 써내려 가는 글에 선 슬픔


으로 죽음을 향해 돌진했다. 지지 않으리라고,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작고 부족한 나의 몸뚱이가 저 모든 슬픔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 나는 괜찮다고. 그리고 마주 선만큼, 맞선만큼 살아갈 힘을 얻었다.

값진 인생을 사는 기분, 좀 더 나의 삶을 쓸모 있게 쓰고 싶은 기분, 여유 따위 부리지 않고 일분일초 꼭꼭 씹어 삶을 살아내고 싶은 기분.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앞으로 계속 많은 슬픔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슬픔이 갉아먹는 삶이 아닌, 슬픔을 동력 삼아 사는 삶.


슬픔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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