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가을 사이

힘내요 우리

by 김소영

일 년 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쓰고자 하는 욕망으로 뭉근한 기대를 갖던 가을은 그 욕망을 뒤로하고 좌절하며 추락했지만, 나는 그때 나의 광기를 동력 삼아 겨울을 나겠다 다짐했었다. 작년 가을, 아파트 단지 내를 휘감던 안개와 그 계절 사이로 스미던 냉기. 해프닝처럼 지나갔던 단지 내 추락사와 대통령과 마약 사범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계속되었던 전쟁과 광기. 잊을 수 없는 가을을 그렇게 보내고, 새로 맞은 오늘, 여전했던 광기는 이제 더는 안개처럼 스며들지 않고 마침내 그 고개를 들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우리는 바다를 빼앗겼고, 비공식적으로 그 책임을 우리가 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욕망의 그치던 쓰고자 하는 의지를 마침내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의지는 죽은 몸을 일으켜 좀비처럼 쓰게 했다.


무력하다는 것은 사람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지성인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나는 더욱이나 할 수 없기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광기를 부린 듯, 계속해서 글을 쓴 듯, 어떤 누가 무슨 변화를 겪고, 동요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더욱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없을지 언정, 좀비처럼 이라도 살아 있어야 했다. 말의 힘이 생겨 결국엔 위협이 되고, 또 공포스러워지는 그날까지 나는 계속 써야만 한다. 죽다 살아난 사람이 뭔들 못할쏘냐. 아무도 듣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산에 부딪힌 메아리는 결국 돌아온다.


이토록 큰 변화는 자칭, ‘읽고 쓰는 사이(둘이 하는 독서모임)’과 시모임에서 왔다. 읽다 보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쓰다 보면, 사그라지는 의지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며, 우정이라는 것을 쌓았다. 모두들 나의 죽다 살아남에 감사해 주었고, 함께 눈물 흘려주었으며, 시시때때로 서로의 분노를 나누며, 함께 ‘읽고 쓰기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읽고,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지만 썼으며, 빼앗길 들에도 봄이 올 것임을 기대했다.


‘르네상스처럼 지금이 바닥이면, 뒤집히는 날이 올 거예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함께 말했다.


혼자였다면 나의 글은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겠지만, 함께 여서 나의 글은 한 때 죽었지만, 일어서 움직이고 있다. ‘공포’가 되고야 말겠다. 소리 없는 외침 말고 물어뜯는 공포가 되어 흩어지지 않고 선명할 것이다.


마침내 뚜렷한 적 없던 가을의 색채가 선명해지고 있다. 열기와 냉기 사이를 오가며 서서히 다가오던 가을 말고, 오색빛깔 찬란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가을을 맞은 기분이다. 이대로 보낼 수 없던 가을을 뒤로하고 찬란한 가을이 왔다. 여전히 쓰는 것 이외에 하는 것은 없지만, 나는 여전히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제는 살아있음에 하는 감사 말고, 살아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무언가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봉사하고, 목소리를 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 것, 그것이 두 번 살게 된 삶에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혐오와 다툼으로 겨울을 나고 싶지 않다. 그 가을이나 지금이나 전쟁은 끝나야 하며, 사랑 없이 피어난 자리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 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살게 했던 것은 결코 힘이 되어준 ‘슬픔’도 동력이 되어준 ‘분노’도 아니었다. 뭉근하게 다가오는 배려와 그래서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현명한 대처와 그에 따른 선명한 결과일 것이다.


늘 그렇듯 가을, 겨울, 봄, 여름, 다시 가을이 온다. 그러나 한 해도 같은 가을은 없다. 이유는 우리가 결코 가만히 가을을 맞고, 준비 없이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가을과 가을 사이, 나는 죽다 살아났고, 또 다가올 가을과 가을 사이, 우리는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