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받은 위로

항암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by 김소영

암 환우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암이 아니라는 말' 아닐까. 암이 선고된 순간부터 우리는 수만 번 만의 하나를 따져보고 또 따져보며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살아간다.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그 암흑 같은 기대에.


치료가 시작되고 한 삼 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의사는 내게 ‘암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 맘 때쯤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남편은 계속해서 화를 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데, 나 혼자 암이라고 생각한다고, 의사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고. 나는 나를 환자로 받아들여주지 않는 남편의 야속함에 여러 날 울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의사의 입에 우리의 두 눈과 두 귀를 집중하고 있던 그 순간, 의사의 입으로부터 ‘암이 아닙니다.’라는 소리를 듣던 그 순간, 남편은 무너졌다. 단 한 번도 운 적 없던 그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들썩이는 그의 어깨에 선생님과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단 한 번도 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는 것을. 그에게 나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이자, 아플 리 없는 잃을 리 없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선생님은 남편에게 ‘암이 아니라는데 이렇게 우시는 분 처음이네요’ 했다. 태어나 처음 우는 아이처럼 꺼이꺼이 우는 남편을 이끌고 문을 열었을 때, 문 밖에 선 동생은 남편의 눈물에 또 한 번 무너졌다.

‘아, 암이 맞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재차 확인받고자 내게 묻는 동생에게 고개를 젓자, 동생은 그 작은 팔로 우리 둘을 모두 껴안고 엉엉 울었다.

‘아니냐고, 아닌 거 맞냐고, 정말 이냐고’


젊은이 셋이서 폐암 병동에서 울고 있으면 안 되었다. 그곳에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본인의 선고를 앞두고 떨고 계셨다. 부둥켜안고 우는 우리를 보고 얼마나 안타깝고, 동시에 두려우셨을까. 모두들 눈물을 애써 감추지 않으셨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놀람과 감사의 눈물임을 아셨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뜻하지 않게 암병동에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우리는 기뻐 우는 것이 민망하여 급히 자리를 떴다. 그때 나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사의 말 한마디가 이만큼의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늘 내가 틀릴 것을 알면서도 암흑 같은 기대를 안고 그 문을 들어서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암이 아니라는 말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얼마나 그 말에 기대어 살게 되었는지, 급기야 초 하나를 꼽고 생일 케이크도 불었다. 그날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었으므로.


또다시 삼 개월이 흘러, 암이 아니라는 그 말이 오진으로 밝혀졌지만, 나는 그 순간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 순간 그 공간에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있었는지를 나는 기억한다. 그것은 안도였고, 희망이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씰룩씰룩 튀어나오는 웃음을 막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너무 기뻐 울었다. 남편의 눈물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동생의 눈물이 얼마나 큰 안도감이었는지, 그 병동의 눈물바다가 얼마나 큰 안타까움과 두려움이었는지 나는 안다. 결코, 단연코,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이 얼마나 큰 감사함이었는지. 그 뒤로 찾아왔던 어떤 큰 시련보다 그 순간의 위로가 얼마나 컸는지. 나는 그 눈물의 위로를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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