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캠밸은 속삭인다. 모든 곳에서 상징을 보라. 죽음을 딛고야 일어서는 삶의 비애를 긍정하라.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이미 주어진 삶의 고통을 부정하지 말라. 타자를 죽이고, 그 시체를 먹어야만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 그것이 삶임을 인정하라고.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기쁘게 참여하는 희열, 그것이 신화 속 영웅의 가장 아름다운 본성이라고. 비논리적이라고, 비과학적이라고, 난센스라고 비웃지 말고, 신화를 통해 인류의 잊힌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라고.(…) 우리가 가장 원하는 꿈, 누구에게도 말해보지 못한 수줍은 꿈을, 밤새워 공들여 또박또박 종이 위에 적어보자. 그것이 바로 우리 안의 신화다.
<시네필 다이어리>중에서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주어진 삶의 고통을 부정하려 했던 것이다. 전업작가로 살고 싶다는 욕망과 더불어 글을 쓰기 위해서 투 잡을 뛰어야 하는 현실은 나를 잡아먹으려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쫓기듯 사는 삶은 우리 삶을 좀먹는다. 그러나 이러한 우울의 늪에 갇히기 전에 일단 써보니 알게 되었다. 삶의 고통을 입에 머금은 채라 할지라도 써내려 가야 한다는 것. 우리가 욕망하는 어떤 것이 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해방감이 되어 주었다.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이 불행하는 것은 결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글의 세계에서는 맘껏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를 기대케 해 주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눈부시던 여름에 작업실을 계약했다. 사실 그때도 나는 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계약을 취소할까 여러 번 고민하고, 마침내 부동산에 얘기를 꺼냈을 때, 나의 번복으로 피해를 볼 다른 세입자의 얘기를 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계약하기로 했다. 내 공간이 생겼다는 행복감의 젖어 몇 주가 행복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 사이 몇 번을 아팠고, 작업실에 가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밥벌이도 겨우 할 지경이라, 내 작업은 당연히 뒷전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이렇게나 무책임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다가도 ‘아니야, 꿈꾸던 일에는 당연히 대가가 들지, 아픈 것도 곧 지나갈 거야’ 하는 날들이 여럿이었다. 그렇게 청소와 육아와 수업만 쳇바퀴 돌다가 가을을 맞았다. 나에게 늘 가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계절이었는데, 누워있느라 파란 하늘을 볼 세도 없었다. 지독하리만큼 깊은 자괴감이었다. 전에 썼던 시들을 톺아 보았다. 파랑은 검거나 깊지 않고, 바다나 하늘처럼 저 너머를 보게 해 준다고 썼던 글을 발견했다. 그렇다. 처음 작업실을 계약했을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비루한 현실 너머로 나의 미래의 행복을 세어보는 일을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의 차이. 그 차이에서 지금의 행복이 세어지는 것이었다.
그치지 않는 지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친구이기도 지인이기도 한 이들은 내게 선물이나, 애정과 같은 지지를 통해 내가 지지 않을 마음을 갖게 한다. 그치지 않는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라도 계속 써야 한다. 글은 몸으로 쓰는 것이기에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내가 가르치는 친구들에게 강조하는 ‘A book A day’를 내가 가장 못하고 있다. 하루에 한쪽이라도, 하루에 30분이라도 걸어야 한다. 그 사이에 발견하는 행복들을 결코 놓치지 않으면서. 그럼 그것으로 가을을 보내주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누워있느라 아직 너의 진면모를 보지 못했으니, 잠시만 더 머물러 달라고 떼를 써 본다. 그랬더니 다시 날이 더워졌다. 딸아이가 바람막이를 벗으며, ‘엄마, 가을인데 너무 더워’라며 재잘거린다. 그랬더니 다시 바람이 분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얼마나 살고 싶은지, 잘 살아내고 싶은지 알기라도 한 듯이.
지나가는 상징들이 감사로 다가온다. 입 안에 고통이 달다. 마치 쓰고 단 살구 사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