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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Oct 16. 2024

[거제] 쌍근마을에서 멸치 잡기 체험

거제도 이야기


왕조산 자락 해안을 따라 안겨있는 작은 어촌에 도착했을 때 방파제에 찰랑대는 파도 소리 말고는 마을 전체가 바다에 잠긴 듯 고요하고 졸렸다. 요즘 시골에서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건 농어촌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어촌은 철 따라 바다에 나가 일하는 사람이 많아 더욱 한적하게 느껴진다. 거제도를 여행하면서 한려해상국립공원 권역인 쌍근마을의 어촌체험관 숙소에서 묵었다. 폐교 터에 지은 시설을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다. 


맘 좋은 민박 집주인 따라 배 타고 나가 건져 올린 광어를 막 썰어 한 입에 두 점씩 넣는 뱃사람 체험을 기대하고 어촌을 찾아간 건 아니다. 요즘 농어촌에 체험마을이 많이 생겼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체험이 별로 없어서 어촌에서는 고작 장화 신고 갯벌에 나가 조개, 바지락 캐는 정도다. 그것도 물때가 맞아야 되고. 


출장과 달리, 여행할 때의 숙소는 단순한 잠자리가 아닌 여행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머무는 곳에 따라 여행의 경험과 기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도시화로 인해 잊히고 단절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을에 가야 들을 수 있다. 역사의 주인공인 엘리트에 가려지고 기록되지 않은 채 '사람들'과 함께 사멸될 소중한 향토사다.



쌍근마을어촌체험관

쌍근마을의 주요 소득원은 멍게, 굴, 그리고 멸치다. 올해는 수온이 높아 멍게가 잘 안 되었다고. 멍게와 굴은 양식하지만 멸치는 바다에서 잡아 올린다. 이 마을에서 잡고 가공한 멸치는 예로부터 이름이 나서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요즘은 가는 데마다 '진상품 마케팅'을 벌이는 통에 진상품의 약발이 떨어지긴 했다. 조선시대를 폄훼하면서도 식재료에 대한 당시의 평가는 신뢰하는 게 재미있다. 멸치는 대부분 남해안에서 잡는데 그중에서 쌍근마을의 은빛 멸치를 최상으로 쳐준단다. 그나마 물량이 딸려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나는 물량이 딸리는 현장을 며칠 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쌍근마을에서는 멸치를 '정치망定置網'이란 그물로 잡는다. 수심 50m 이하의 연안 일정한 장소에 자루 모양의 그물을 붙박이로 설치해 놓고 들어간 물고기가 되돌아 나올 수 없도록 차단시켜 잡는 함정식 그물이다. 그런 뜻이라면 정치政治망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구판장에서 만난 마을 원로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마을 앞바다에 설치해 놓은 정치망 어장을 해방 후 마을 어촌계에서 인수해 공동 운영하고 있다. 마을에서 뭘 작업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배가 새벽 5시 전에 나가 멸치를 잡아오면 즉시 가공하기 때문에 못 봤을 수도 있다고 한다. 



쌍근마을에서는  현재 네 가구 여덟 명이 공동체를 구성해서 멸치를 생산하고 있다.



멸치 잡이 


갑자기 멸치에 관심이 많아졌다. 멸치배의 선장을 수소문해서 정치망 멸치 잡이 견학을 부탁했더니 새벽 5시 반에 배가 나간다고 시간 맞춰 부두로 나오라고 한다. 선장이 마을의 멸치 공동체를 총지휘하고 있다. 요새는 멸치가 안 잡혀 하루 걸러 바다에 나간다고 한다. 새벽 일찍 나가는 이유는 멸치가 아침 일찍 먹이활동하는 습성이 있고, 수온이 올라가면 멸치가 다시 빠져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랜턴을 켜고 부두에 나가니 70대의 선장이 혼자 나와 준비하고 있다. 젊어서 상선을 타다 정치망 멸치잡이 한 지는 30년 되었다고 한다. 출항 시간이 되니 어둠 속에서 선원 두세 명이 나타난다. 


캄캄한 새벽에 배를 타고 2 킬로 미터 정도 나가서 선장이 여기가 어장이라고 하니 줄지어 떠있는 그물의 부표가 겨우 보인다. 수심은 약 10 미터 정도. 



선장과 선원들이 바지선으로 옮겨 타고 그물의 한쪽 면을 서서히 들어 올리면서 바지선의 동력으로 다른 쪽을 향해 좁혀간다. 선장이 오늘은 멸치가 없는 것 같다고 '선언'한다. 멸치가 있으면 그물을 들어 올리기 전에 벌써 물속에서 멸치가 반짝인다고. 쌍근 멸치가 귀한 이유를 직접 확인했다. 



멸치 대신 올라온 갈치와 삼치를 뜰채로 뜬다. 여기선 멸치가 '꿩'이고 갈치는 '닭'이다, 모양 빠지게도. 멸치 외에는 환영을 못 받는다. 멸치는 마을로 싣고 가서 가공하지만 잡고기는 어느새 접근한 다른 어선에 상자째 넘긴다. 



멸치와 다른 물고기를 섞지 않으려고 그물을 두 겹으로 덧댔다. 코가 큰 녹색 그물로 큰(잡) 고기를 일차 거르고, 빠져나간 멸치는 밑에 친 갈색 그물에 걸린다. 오늘은 갈색 그물까지 내려갈 선수가 없다. 


빈 배로 귀항하는 데 부두로부터 스티로폼 부표 수거에 대한 안내방송이 들린다. 굴이나 멍게를 양식할 때 바다에 가라앉지 않도록 잡아주는 스티로폼 부표를 70년 대 중엽부터 사용해 왔다. 국내 양식장에 설치한 부표 5천만 개중에 스티로폼 부표가 4천만 개라고 하니... 가볍고 싸긴 하지만 사용 중에 쉽게 파손되어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함에 따라 어장 환경을 훼손하고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모든 양식 어장에서 스티로폼 부표의 신규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


 사진 왼쪽 이층 건물이 멸치 가공 작업장.


멸치 가공  


멸치는 잡는 즉시 삶아서 말린다.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쉽게 부패해서 맛과 품질이 떨어진다. 삶고 말리는 방법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다. 


작업장 2층에 올라가서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내려와 멸치 가공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멸치는 없는 채로.


멸치를 잡아온 날은, 상자에 담긴 멸치를 플라스틱 발에 뿌려서 깔고 자숙기에 넣고 소금물과 함께 92 도 정도에서 1-2 분 삶는다. 삶는 과정에서 멸치에 붙어 있는 세균들이 사멸되어 보다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쌍근마을은 품질 관리를 위해 신안의 천일염을 쓴다고 한다. 너무 오래 삶으면 멸치 배가 터지므로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지금은 기계가 알아서 한다고. 설명을 해주는 아주머니가 '이제는 기계가 알아서'를 반복하는 까닭은 자동화되기 이전엔 온도와 시간 맞추는 게 꽤나 까다로운 작업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아주 옛날에는 가마솥에 끓여서 햇빛에 내다 말렸었고.


자숙기에서 삶은 멸치는 플라스틱 발에 넣은 채로 건조실로 보내 냉풍에 말린다. 온풍으로도 말릴 수 있지만 냉풍으로 말려야 품질이 좋다.  


건조한 멸치를 선별기에 넣고 5가지의 크기로 분류한 다음


최종 육안 검사에서 사람 손으로 선별된 크기를 확인하고 불순물과 고등어 새끼, 전갱이 새끼 같은 잡고기를 걸러낸다


쌍근 정치망 멸치는 은빛에 통통하고 육수가 잘 우러나며 기름기가 많아 맛이 고소하다고. 가공 과정에서 잔손질이 많이 가는 만큼 멸치에 잔여물이 없다.




멸치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식재료이면서도, '멸치도 생선이냐'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멸시'당한다. 멸치는 머리, 아가미, 꼬리, 지느러미 따위 있을 거 다 달린, 칼슘이 풍부한 버젓한 생선이다. 멸치의 '멸蔑'은 업신여길 멸이다. 작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일 터이다. 작은 물고기들은 먹이사슬의 하위에 속해 있어 주로 플랑크톤이나 작은 해양생물을 먹기 때문에 상위 포식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금속 축적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멸치처럼 작은 존재라도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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