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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과 군국 일본 이야기' / 김성웅 지음

독서록

by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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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과 군국 일본 이야기' / 김성웅 지음,


군사학자인 저자는, 일본이 어떻게, 근대국가가 되었고 군국주의가 형성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치밀하게 분석했다.


메이지 유신의 핵심은 '전략적 실용주의'였다. 조슈와 사쓰마 번의 하급 사무라이들은 처음에는 외세를 감정적으로 배척하는 '양이'를 외쳤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과 싸워보고 나서 생각이 바뀐다. 외세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서 부국강병을 이루어 서구와 동등하게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양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소양이'에서 '대양이'로의 전환이다. [72 페이지]


1885년 경에 이미 영국으로부터 도입한 순양함에 생도들을 탑승시켜 몇 개월씩 지중해까지 원양실습을 나갔다는 점이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영국의 교육과 기술 지원으로 인력과 장비 면에서 보잘것없었던 구식 수군이 최단 시간 내에 근대적인 강력한 해군으로 탈바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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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직속의 중앙군을 조직하며 상설 편제로 전환하였다. 이는 일본제국 육군의 근간이 되었고 황실 경호대인 어친병은 황실 근위사단으로 개편되었다. 1870년 10월 일본 육군은 한때 유럽을 석권하였던 나폴레옹의 프랑스식 병제를 채택하기로 확정하였다.

책, 131-132 페이지


군대 개혁은 철저했고 러일전쟁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한편 주목할 대목은 '충성=군인 존재 이유'라는 공식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군대가 천황의 사적 집단, 즉 '황군'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천황 신격화 작업이었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전통의 계승이 아닌 정치적으로 의도된 신화의 재구성 [146 페이지] '이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신을 만들었고, 만들어진 그 신을 위해 수많은 인간을 희생시켰다.' [152 페이지]는 대목은 일본 군국주의의 본질을 꿰뚫는다.


일본 해군 유학생들이 귀국 후 교관이 되어 '부하를 개죽음으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는 살인범이나 다름없는 무식한 지휘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261 페이지]라고 강조했다는 대목은 흥미롭기도 하고, 현대 군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지휘 철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상적인 부분은 일본의 교육 개혁이다.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는 나이와 신분 차별 없이 문하생을 받아들였고, 메이지 정부는 남녀 모두를 교육 대상으로 명시한 근대적 학제를 도입했다. 전통 윤리(유교)와 근대 제도(서구식)를 절묘하게 결합한 정책이었다.[172 페이지]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한국 사람으로서) 읽기가 고통스러워진다. 일본 근대사의 행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조선의 망국 과정을 타인의 시각으로 목도하게 된다. 일본이 주어가 되어 서술하는 근대사에서 조선은 무능하고 나태했고 결국 타국의 결정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객체로 축소되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는 일본의 시선에서 조선은 그저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라, 일본의 전략적 판단 속에서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망국의 본질이 아닐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타국의 역사책에서 부록처럼 다뤄지는 것.


흥미롭게도 일본, 청나라, 조선 모두 자국의 정신문화를 지키면서 서구 문물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같았다. [176 페이지] 하지만 결과는 판이했다. 일본과 조선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는 '실행'에 있었다. 조슈와 사쓰마 번은 막부가 금지한 유학생 파견 조치를 위반하면서까지 영국으로 젊은이들을 보냈다. [82-84 페이지] 금지령을 어기고라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조선은 원칙과 명분에 갇혀 움직이지 못했다. 일본은 실용적 인재 양성에 집중했고, 외국인 교사 초빙에 큰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기술을 배웠다. 조선은 성리학적 명분론에 매몰되어 실용 학문을 경시했다.


책의 23장 '망국亡國 황제, 흥국興國 황제'는 뼈아프다. 메이지 천황과 고종을 대비시키며 조선 망국의 원인을 냉정하게 파헤친다. 1907년 헤이그 만국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고종의 사례는 참담하다. 열강은 외교권이 없는 나라라며 외면했고, '고종은 위조 사건이라 항변하다가 대신들이 수습하라며 신하들 등 뒤에 숨어버렸다.' [297 페이지] 리더십의 부재가 이보다 극명하게 드러날 수 없다.


더 충격적인 것은 고종이 광산 채굴권, 철도 부설권 같은 국가의 미래 자산을 외국에 헐값으로 넘기고, 그 대금을 국가 근대화가 아닌 황실의 권위 유지와 사치스러운 궁중 행사에 낭비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군왕에게 갖는 충군과 애국의 관계가 망국의 순간에 한 나라의 미래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 [305 페이지]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게 약속은 지키되 아픈 과거는 잊지 않겠지만 이제부터는 미래를 준비하자라고 말하는 것이 혐한도 반한도 넘어서며 우리가 저들을 이기는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얻는 교훈은,


첫째, 실용주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둘째, 인재 양성. 설명이 필요 없다.


셋째, 시스템. 일본은 천황을 신격화하면서도 실제 정치는 유능한 관료들이 담당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조선은 왕 개인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었고, 그 왕이 무능하면 나라가 무너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다시는 남의 역사책의 각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책의 말미에,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 이후 미군의 판단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미국은 (일본이) 일본인의 완전 소멸이나 국가 존속 불가 시에나 항복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미군의 병력 보존을 위해 차라리 핵 투하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악을 쓰고 더 크게 우는 아이가 더 큰 매를 벌었다.' 는 [329 페이지] 저자의 판단은 섬뜩하지만, 광신적 군국주의의 말로를 잘 보여준다.


저자 김성웅은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로 말한다. 일본을 무조건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우리가 배울 점과 경계할 점을 독자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자주 잊는 진리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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